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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결말이 뭐든 한국엔 악재

중앙일보 2013.06.14 01:46 종합 8면 지면보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13일 아베 신조 총리와 회동 후 총리공관을 나서며 입을 다문 채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금융시장은 일본 경제의 긍정적인 개선 흐름을 반영해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뉴시스]


다시 20여 일 만에 도쿄 금융시장이 새파랗게 질렸다. 13일 닛케이 평균 주가는 전날보다 6.35% 빠지면서 1만2500선이 무너졌다. ‘아베노믹스의 역습’이라 불리며 지난달 5·23 쇼크(7.32% 급락)에 이은 두 번째 충격이다. 도쿄 시장에서 엔화 가치도 달러당 94엔대로 초강세를 기록했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치솟았던 주가·환율이 상승분의 딱 절반을 반납한 셈이다. 이런 일본 금융시장의 급변동성을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조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에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이 폭넓게 퍼지는 분위기다.

아베노믹스 7개월 현장 가다 <하> '뉴 재팬' 실험 성공할까
성공 땐 한국 수출기업 타격
실패 땐 엔화자금 대거 이탈



 아베노믹스는 새로운 도전이자 거대한 실험이다. 정부의 ‘의지’로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움직여 보겠다는 것이다. 뭉칫돈을 풀어 인위적인 거품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2%의 인플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또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를 자극해 아베의 ‘뉴 재팬(new Japan)’ 꿈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금융 버블이 진행되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실험 도중에 ‘멘털 붕괴(심리적 충격)’가 일어나거나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기대감이 실물경제로 제대로 전이(轉移)되지 않아도 아베노믹스는 겉돌게 된다.



 아베노믹스의 향방에 대해 똑같은 회사의 분석가들도 견해가 엇갈린다. 도쿄에서 만난 에스퍼 콜 JP모건 조사부장은 “아베노믹스의 특징은 아주 적극적이며 매우 공격적이라는 사실”이라며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 아베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묻어난다”고 했다. 그는 “연말까지 달러당 120엔의 엔 약세가 진행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밝게 내다봤다. 반면에 서울에 들른 간노 마사아키(管野雅明)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베노믹스는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며 평가절하했다. 그는 “아베노믹스는 오히려 절반만 성공해야 일본에 이롭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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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노믹스에 대한 해외 전문가들의 공감대도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쪽에 맞춰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크리스티나 로머(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일본이 고질적인 디플레에 ‘왜 아무것도 안 하나’라는 반성 위에서 아베 노믹스를 선택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이 거대한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로머 교수는 “역사상 제로금리 하에서 세 번의 금융 완화 시도가 있었지만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직후를 빼고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금융시장의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게 사실”이라며 “현재 조정을 받는 단계인 만큼 성패를 판정하긴 이르다”고 했다. 그는 “돈을 푸는 일은 쉽다. 아베노믹스의 진짜 변곡점은 일본 정부가 기득권층 반대에 맞서 과감한 구조개혁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루스벨트 정부가 80여 년 전 금융 완화에 성공한 것도 말을 넘어 과감한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란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해외에선 한국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또 아베노믹스의 명분은 ‘디플레 탈피’지만 결국은 환율을 흔든다는 게 불편한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반발해도 먹혀들 분위기는 아니다. 일본은 “달러당 100엔의 환율은 2008년 리먼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정상화 과정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국제사회도 G7과 G20 회의를 통해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베노믹스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濱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2000년과 2008년 당시 원-엔 환율이 배 가까이 벌어졌다. 일본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엔고(高)에선 한국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베노믹스가 물밑에서 환율전쟁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한국이 온통 엔 환율이나 도쿄 증시의 널뛰기에 정신을 빼앗길 때가 아니다.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오히려 지금까지 일본 기업들이 극심한 엔고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그 지혜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꾸준한 연구개발과 구조조정을 통해 변화된 환율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면 우리 수출 기업에 부담이고 실패하면 한꺼번에 서울 시장에서 엔화 자금이 탈출해 금융 부문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는 수동적 입장인 만큼 양 극단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피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성패는 결국 시장이 판단할 몫이다. 기세 좋게 달려온 아베노믹스가 주가·환율이 출렁거리면서 7개월 만에 기로에 섰다. 도쿄 금융시장은 막연한 기대감을 접고, 냉정하게 주판알을 놓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의 첫 성적표는 9월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양적완화·재정확대·신(新)성장전략이라는 아베노믹스의 3개의 화살이 제대로 과녁을 맞혔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만약 잔뜩 거품만 일으킨 채 허약한 일본 재정에 악영향만 끼쳤다면 냉혹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이미 S&P는 2011년 4월, 피치는 지난해 5월 일본의 신용등급을 낮추면서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특별취재팀

도쿄=이철호·남윤호 논설위원, 이승녕·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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