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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전설적 갱 두목 벌저 뒷거래 들통날라 … 떨고 있는 FBI

중앙일보 2013.06.14 00:54 종합 18면 지면보기
3일 변론기일에 출석한 제임스 벌저(가운데). [보스턴 AP=뉴시스]


벌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떨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시작된 1970년대 보스턴 갱단 ‘윈터힐’의 두목 제임스 화이티 벌저 재판 때문이다. 1929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벌저는 70~80년대 보스턴 남부를 주름잡은 악명 높은 갱이었다. 19명을 살해한 혐의로 FBI의 수배를 받았지만 95년부터 16년간 도피행각을 벌였다. 이 때문에 그를 정보원으로 이용한 FBI가 뒤를 봐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론이 비등하자 FBI는 2011년 200만 달러 현상금을 걸고 TV 광고까지 낸 끝에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교외 아파트에서 그를 체포했다. 그렇지만 재판이 시작되자 FBI는 행여 벌저와의 부적절한 뒷거래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대 조직 몰아내려 FBI 손잡아
체포작전 귀띔해준 요원 실형도
"16년 도피, 조직적 비호 증거" 여론



 아일랜드계인 벌저는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던 보스턴 암흑가의 비주류였다. 그러나 기존 마피아 조직 간 전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윈터힐 갱단의 두목이 됐다. 이 무렵 보스턴을 거점으로 미국 북동부를 장악하고 있던 이탈리아계 패트리아카 마피아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던 FBI 특수요원 존 코널리의 눈에 들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를 몰아내려는 두 사람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벌저는 코널리의 정보원이 됐다. FBI의 비호 아래 벌저는 마약 밀매·경마도박·고리대금 등으로 돈을 벌며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정보를 FBI에 팔아넘겼다. 대신 FBI는 벌저의 반대파 숙청을 눈감아줬다. 거칠 것이 없었던 벌저는 반대파와 경찰 정보원은 물론 무고한 여성까지 19명이나 살해했다.



 이날 첫 재판에서 미 연방검찰청 브라이언 켈리 검사는 “벌저는 단지 갱 두목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살인을 저지른 잔인한 살인마”라고 강조했다. 19명의 희생자 가운데는 두 명의 여성도 포함됐다. 벌저와 FBI의 유착 관계가 알려지자 94년 마약단속반(DEA)이 나섰다. DEA는 FBI에 알리지 않고 매사추세츠주 경찰과 함께 벌저 일당 체포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급습 직전인 12월 23일 코널리로부터 정보를 받은 벌저는 부인과 함께 도망갔다. 벌저는 도주에 대비해 미국과 유럽 곳곳에 현금·귀금속과 가짜 신분증을 넣어둔 비상용 박스까지 마련해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아이들 걱정에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자 벌저는 내연녀였던 캐서린 그레이그와 16년간 도피 생활을 했다.



 이후 벌저는 미국은 물론 영국 런던에서도 목격되자 여론이 악화됐다. 비록 벌저에게 DEA 급습 정보를 흘려준 코널리 요원이 나중에 기소돼 40년 형을 받긴 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화이티 벌저』란 책을 쓴 보스턴글러브 케빈 큐런은 “FBI가 쫓은 수배자 중 오사마 빈 라덴 다음으로 중범죄자였던 벌저가 16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은 건 코널리 요원 한 사람의 힘으론 불가능했다”며 “재판 과정에서 FBI와 벌저의 부적절한 뒷거래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벌저는 FBI 비호설을 일축하고 있다.



 벌저의 변호를 맡고 있는 JW 카니는 “벌저는 그가 FBI의 끄나풀이었다는 불명예와 힘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는 오명을 재판을 통해 씻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벌저의 동료였다가 그의 범행을 증언하고 나선 증인들이 FBI 비호설을 제기하고 있어 그가 결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소한 9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벌저 재판에 벌써부터 미국 언론은 특집 방송과 기사를 내보내며 흥분하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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