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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 검은 수요일 … LG배 16강서 전멸

중앙일보 2013.06.14 00:40 종합 23면 지면보기
LG배에서 이세돌(오른쪽)이 중국 퉈자시에게 패배한 뒤 복기하고 있다. 한국 기사의 16강전 전원 탈락에 바둑계는 대체적으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사진 한국기원]


한국 바둑이 ‘전멸’의 비극을 맞았다. 무대는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제18회 LG배 세계기왕전(우승상금 3억원). 14명이 출전한 한국 기사들은 32강전부터 비틀거리는 조짐을 보이더니 12일의 16강전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지난 20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한국 바둑이 최근 중국의 공세에 밀리며 내리막 길에 접어든 느낌은 있었으나 이런 식의 대참사를 맞이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국기원은 침묵했고 응원하던 팬들은 넋을 잃었다. 8강전은 중국 기사 6명과 일본 기사 2명이 치른다. <대진표 참조>

14명 출전, 6명 16강전 진출
이세돌 무너지며 줄줄이 패배
이창호·박정환은 32강서 탈락
중국 6명,일본 2명 8강 잔치



 32강전이 벌어진 10일 이창호 9단과 함께 랭킹 2위의 박정환 9단이 탈락했다. 이창호는 중국 랭킹 3위 퉈자시 3단에게 졌고 박정환은 중국 2위 천야오예 9단에게 졌다. 홀로 예선전을 치르며 분전했던 이창호, 그리고 한국 최고의 유망주 박정환이 꺾였다는 아쉬움을 삭일 새도 없이 비보가 연속 날아들었다.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 온 한국 3위 김지석 9단이 이름도 처음 듣는 중국의 샤천쿤 2단에게 패배했고 최철한 9단은 저우루이양 9단에게, 박영훈 9단은 15세 소년기사 리친청 2단에게 무너졌다. 강동윤 9단과 조한승 9단도 리저 6단과 무명의 궈위정 3단에게 덜미를 잡혔다. 한국랭킹 2~11위 사이의 기사들이 32강전에서 모두 탈락했다. 한국은 32강전에서 이미 주력이 무너진 것이다.



 랭킹 1위 이세돌 9단이 살아남은 것이 그나마 커다란 위안이었다. 한국은 오랜 세월 단 한 명의 실력자가 적진을 돌파하며 우승을 거두곤 했다. 최강자 이세돌만 있으면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때마침 안형준 4단이 중국 랭킹 1위 스웨 9단(전기 LG배 우승자)을 격파했고 무명의 김성진 2단은 중국 바둑의 상징 구리 9단을 꺾으며 한국에도 무서운 신예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6강전엔 한국 6명, 중국 7명, 일본 3명이 올랐다. 수적으로는 그럭저럭 균형이 잡혔다고 자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2일 한국 진영은 이세돌 9단이 퉈자시에게 밀리면서 일찍부터 먹구름이 감돌았다. 퉈자시는 중국에서 최근 20연승을 기록한 상승세의 신예. 사실 16강에 6명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믿을 만한 우승 후보는 오직 이세돌뿐이었기에 걱정이 컸다. 결국 이세돌은 퉈자시의 침착한 플레이에 역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돌을 거뒀다(161수, 백불계패). 오후 4시가 넘어서면서 한국 기사는 모두 지고 일본 5관왕 이야마 유타 9단과 맞붙은 이영구 9단 한 사람만 살아 남아 있었다. 미세하지만 흑을 쥔 이영구 쪽이 이길 것 같다는 분위기였으나 마지막 잎새 이영구마저 1집반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 기사는 8강에 단 한 사람도 올라가지 못하고 모두 탈락했다. 바둑사에 ‘피의 수요일’이라 기록될 만한 대참사였다. 중국 말고 일본에까지 밀린 것은 근 20년 동안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은 “올 것이 왔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지만 충격이 크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비상한 대책을 강구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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