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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거장의 과거를 엿보는 즐거움

중앙일보 2013.06.14 00:06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첫 장을 넘기는 순간, 30년 전 과거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허영만 작가의 1980년대 인기만화 『제7구단』 말이다. 이 작품을 소재로 한 영화 ‘미스터 고’의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다시 출간된 만화를 펼치니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85년 잡지 ‘보물섬’에 실린 이 만화를 보기 위해 학교 앞 언덕을 올라 친구의 집까지 찾아갔던 기억. 당시 반 아이들을 양분했던 ‘소년중앙파’와 ‘보물섬파’ 중 부모님의 선택에 의해 소년중앙파가 되었지만, 더 많은 만화가 실리는 보물섬을 보는 아이들이 늘 부러웠다.



 ‘샥스’라는 제7구단이 프로야구 시장에 새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름값도 못하고 매번 경기에서 지는 약체다. 언제쯤 이겨보려나 구단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타자로 테스트를 받고 싶다는 선수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고릴라. ‘미스터 고’라는 이름을 가진 고릴라의 등장으로 야구계는 발칵 뒤집힌다. 그러나 ‘쳤다 하면 홈런’인 미스터 고의 활약에 힘입어 샥스는 연전연승, 다른 팀들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만화 『제7구단』. [사진 위즈덤하우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밌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실수투성이인 고박사, 인기도 없는데 “사인 해 드릴까요”를 입에 달고 사는 사인중 등 제7구단 선수들은 과장되기 그지없다. 상대팀 투수들이 미스터 고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자 ‘샥스’의 모든 선수가 고릴라 탈을 쓰고 경기장에 나타나는 등, 그야말로 ‘만화적인’ 설정도 난무한다. 당연하다. 이 작품은 보물섬의 주요 독자인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이니까. ‘미스터 고’에 맞서는 동물 선수로 시속 110㎞의 대주자 ‘미스터 치(치타)’와 일당백의 외야수 ‘미스터 혹(매)’이 등장했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환희는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어 보는 옛 만화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이제는 ‘한국 만화계의 거목’이 된 허영만이라는 작가의 30년 전을 엿보는 즐거움이다. 요즘의 중후한(?) 만화 스타일과는 전혀 다르게, 30대의 그는 대놓고 황당한 설정을 기운차게 풀어간다. ‘이거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하며 피식 웃음지었을 젊은 만화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재출간된 『제7구단』의 서문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림도 오래됐고 이야기도 오래됐습니다만, 이 세상은 모두 새것들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헌것은 헌것이어서 매력적이다. 이제는 거장이 된 작가의 열정적이지만 조금은 서툴렀던 과거를 만나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한결 줄어드는 듯하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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