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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해보자" 모노즈쿠리의 부활

중앙일보 2013.06.13 01:23 종합 8면 지면보기
일본 수출업종 간에도 아베노믹스의 희비가 엇갈린다. 엔저로 자동차는 큰 수혜를 입었지만 해외 조달망을 많이 갖춘 업종은 원가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11일 일본 고베의 파나소닉 공장에서 한 직원이 출하를 앞둔 노트북을 점검하고 있다. 파나소닉도 30%인 가전제품의 국내 생산 비중을 50%로 높일지 검토 중이다. [블룸버그]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기업인들의 기대감이 커졌고, 한번 해보자는 자세가 눈에 보인다.”

 지난 10일 도쿄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업체 난부(南武)의 노무라 가즈시(野村和史) 회장이 한 말이다. 이 회사는 도쿄의 오타(大田)구에 밀집해 있는 중소 부품업체 중 하나다. 대기업이 좋아지면 이들에 대한 발주량이 늘어난다. 따라서 일본에선 오타구의 분위기가 경기후행지표로도 통한다. 노무라 회장 말대로 요즘 오타구에도 아베노믹스의 온기가 슬슬 퍼지고 있다.

 오타구는 일본이 자랑하는 모노즈쿠리(もの造り·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제조업)의 중심지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9000여 개에 달했던 회사가 지금은 4000여 개로 줄었지만, 남은 회사들은 저마다 세계 수준의 기술 하나씩은 갖추고 있다.

 이곳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주요 관심지역이기도 하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의 육성은 금융완화와 재정지출에 이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다. 아베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소기업을 찾는다. 기술·창조·모노즈쿠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난 6일에는 오타구의 중소기업인 10여 명을 관저에 초청해 식사를 하며 정책건의를 듣기도 했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인을 관저에 부른 건 이례적이다.

 그는 이달 초 야심 차게 발표한 성장전략이 ‘박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여파로 금융시장도 불안해 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산업정책을 보강하겠다는 구상이다. 아베는 9일 NHK에 출연해 “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투자 감세 등 성장전략 2탄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해외 투자자들에게 정책설명을 하기 위해 다음 주 영국 런던에서 금융인들에게 강연을 할 예정이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 예일대 명예교수에겐 해외 순방 경제설명회(IR)를 맡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내외에서 ‘아베노믹스는 실속 없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12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닛케이주가는 1만3289.32엔으로 전날보다 28.30엔 하락했다. 외환시장에선 엔화가치가 한때 달러당 95엔 가까이로 전날에 비해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아베를 초조하게 만드는 요소다.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인 금융완화가 자산 가격을 띄워 소비와 생산을 자극하는 동안 기업이 경쟁력을 스스로 회복하지 않으면 정책의 약발이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정책이 기업에 경쟁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줬는데, 그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다.

 시모무라 미쓰오(下寸三郞) 다이이치투자고문 사장은 “금방 눈에 보이는 자산버블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제 체질개선 사이의 시간차가 문제”라고 말했다. 예컨대 중소기업들은 침체기에 설비투자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낡은 장비와 기술로 신산업을 개척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시모무라 사장은 기업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정권도 바뀌고 정책도 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도 내놓았다.

 그의 말대로 아베노믹스가 반드시 모든 기업에 유리하진 않다. 엔저가 막연히 수출 대기업에 유리하다고 하지만, 당장은 에너지 값을 올려 기업의 원가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석유연맹 기무라 야스시(木村康) 회장은 5월 말 “석유류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 오타구 중소기업 32곳이 협력해 독자 개발한 ‘시타마치(下町) 봅슬레이’. 아베노믹스의 바람을 타고 기술력을 결집시키자는 의도로 만들었다. [도쿄=이승녕 기자]

 업종별로도 온탕·냉탕이 엇갈린다. 주가에 이어 부동산 값이 상승세를 보이자 건설업과 부동산 임대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본부동산협회 사무국의 구보타 가즈야(久保田和哉)는 “지난 20여 년의 침체기 동안에도 잠깐씩 회복 기미가 있다 말았지만 이번엔 그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제조업 중에선 자동차가 가장 먼저 날개를 달았다. 도요타는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매출과 수익 모두 6년 만에 최고기록을 세웠다. 2013회계연도엔 엔저의 효과가 더해져 순이익 전망을 1조3700억 엔으로 제시했다.

 반면 전자 쪽은 애매하다. 엔고 시절 해외 부품공장을 많이 뒀던 탓에 엔저 때 수입가격이 올라 되레 부담이 커지고 있다. 또 반도체·스마트폰처럼 대형 선행투자가 필요한 부문에서도 갑자기 엔저가 됐다고 경쟁력을 지니긴 어렵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같은 업종에서도 주력 생산기반이 국내냐, 해외냐에 따라 엔저 영향이 반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업종 업황도 사정이 어려워졌다. 엔저로 인한 석유·가스 가격 상승 탓이다. 이와 비슷하게 타격을 받는 곳이 운송·항공이다. 이들은 내수 산업의 아베노믹스 특수에서 비껴 있는 편이다. 업종별 격차는 여름철 보너스 봉투의 무게를 좌우한다. 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게이단렌(經團聯)이 집계한 대기업들의 올여름 보너스는 지난해보다 평균 7.4% 올랐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업계가 14.2%나 올린 반면 정보통신(IT)업계는 0.3% 증가에 그쳤다. 조선과 화학도 증가율이 1%에 못 미치고, 섬유·펄프는 되레 지난해보다 줄일 예정이라 한다.

 결국 일본 기업들에도 아베노믹스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산업연구원 사공목 연구위원은 “엔저로 일본 수출업체의 수익은 많이 상승했지만 이게 투자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될지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또 사와카미 투자신탁의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 회장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낙관하지만 긍정적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규제완화와 감세로 투자와 소비를 일으켜야 하는데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도쿄=이철호·남윤호 논설위원, 이승녕·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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