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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7개월 현장 가다 <상> 돈 뭉치가 만든 명암

중앙일보 2013.06.12 01:29 종합 8면 지면보기

경제는 정치라고 하는데, 지금 일본이 꼭 그렇다. 아베 신조(사진)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풀어젖힌 돈이 경기를 띄우는 부력으로 작용하곤 있으나 장기금리·수입물가 상승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아베노믹스의 현장을 가본다.


요즘 도쿄의 거리엔 아베노믹스의 빛과 그림자가 선명하다. 지난달 29일 도쿄역 앞 복합 쇼핑몰 KITTE는 오전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50~60m씩 줄을 설 정도로 북적였지만(왼쪽 사진)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히비야공원에선 어민 2500여명이 모여 기름값 급등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도쿄=남윤호 기자, AP=뉴시스]

11일 오후 도쿄 니혼바시의 미쓰코시(三越)백화점. 7층의 여름 선물 특설매장에선 확연히 달라진 게 눈에 띈다. 가격표의 숫자다. 지난해까지 3000엔(약 3만5000원)대의 선물이 주종이었으나 올해엔 기본이 5000엔, 좀 좋아 보이면 1만 엔짜리가 대세다. 3000엔대는 구석에서 한참 찾아야 나온다. 쇼핑객들이 뽑은 번호표는 평일인데도 오후 3시쯤 500번을 넘었다.

 꾹 눌려 있던 일본인들의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 4월 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1년 전에 비해 1.5% 늘었다. 4개월 연속 증가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효과에 따른 것이다.

 돈을 왕창 풀어 불황에서 벗어나자는 아베노믹스는 주가를 먼저 띄웠다. 11일 닛케이주가는 1만3317.62엔으로 전날보다 조금 하락했지만, 아베 총리 취임 전에 비해 53.7% 높은 수준이다. 이게 소비심리의 바탕이 됐다. 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게이단렌의 후지와라 기요아키(藤原淸明) 경제정책본부장은 “심리가 많이 달라졌다. 일단 자산 효과가 크고, 임금인상 기대도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유층이 먼저 지갑을 열고 있다. 2~4월 티파니의 일본 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나 늘었다. TV나 신문 광고엔 초고가 상품들이 즐비하다. 1억 엔짜리 영국제 수퍼카, 720ml 한 병에 2만1000엔짜리 명품 녹차, 100만엔이 훌쩍 넘는 고급 손목시계…. 도쿄 중심가의 웬만한 레스토랑은 하루 이틀 전 예약으론 자리 잡기 어렵다. 도쿄의 택시 한 대당 하루 수입은 4만5768엔으로 2008년 수준을 회복했다. 도쿄의 택시 기사 기타 슈이치(木田修一)는 “고급 요정이나 클럽이 많은 곳에서 손님이 좀 늘었다. 사람들, 돈 좀 생기면 일단 마시고 보잖아”라고 했다.


 기업인들도 온기를 느끼는 표정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금속 가공업체 머티리얼의 호소가이 준이치(細貝淳一) 사장은 “뭔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온다. 주문도 차츰 늘고 있다. 직원이 모두 35명인데 최근 5명을 새로 뽑았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은행은 11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경기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여기까지가 아베노믹스의 밝은 반쪽의 모습이다. 다른 반쪽은 역시 그늘이 짙다. 엔저로 기름값이 오르자 어민들이 어려워졌다. 지난달 29일엔 전국의 어민 2500명이 도쿄 히비야공원에 모여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런 불만은 농민, 화물트럭 기사 등도 쏟아내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장기 국채금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국채를 대량 발행하고, 향후 경기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등 여러 변수가 겹친 탓이다. 올 초 0.3%였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달 초 1% 가까이로 올랐다. 지금은 일본은행의 개입으로 0.8% 선으로 밀려 있는 상태다.

 이는 곧 국채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므로 투자자들에겐 손실이다. 이들이 일제히 국채에서 손을 털 경우 국채값이 폭락하게 된다. 다만 기대인플레율이 높아지고 있어 실질금리는 비교적 안정세다. 장래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율은 5월에 1.9%대로 높아진 뒤 최근 1%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시장이 출렁이자 야당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그늘을 7월 참의원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태세다. 일본어로 거품을 뜻하는 아와(泡)를 빗댄 ‘아와노믹스’나 위험하다(아부나이)는 말을 덧댄 ‘아부나이노믹스’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래도 금융완화 기조엔 변화가 없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 예일대 명예교수는 “금융(완화)정책으로 자산가치가 높아지면 소비, 투자, 고용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돈을 쏟아부어 그 부력(浮力)으로 경기를 띄우겠다는 뜻이다. 수치목표는 2년 내 연간 2%의 물가상승률과 3%의 안정적 성장이다. 이로써 10년 뒤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150만 엔 많아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여전하다. 간노 마사아키(管野雅明) JP모건재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물가상승률 목표에 대해 “1%도 쉽지 않고, 0.5%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도 “장기불황은 구조적 문제이므로 단기 처방으론 풀기 어렵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도쿄=이철호·남윤호 논설위원, 이승녕·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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