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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77> 서울 내·외부 순환도로

중앙일보 2013.06.04 00:10 종합 23면 지면보기
1998년 12월 30일 서울 내부순환도로 건설 현장을 찾은 고건 서울시장. 공사는 89년 시작해 99년 2월 끝났다. [사진 고건 전 총리]


1980년대 후반 서울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마들평야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지금의 노원구 상계동과 중계동 일대다. 수십만 인구가 입주했지만 교통 대책은 부실했다. 이 지역과 도심을 잇는 역할은 지하철 4호선이 맡았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지하철 6·7호선 건설 계획이 확정됐지만 완공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부순환도로 묘안 골몰하다 "하천변 활용" 번쩍



 서울 동부 지역을 잇는 간선도로를 서둘러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도로를 빨리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울시는 중랑천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중랑천을 따라 길을 내면 하천변과 둑을 활용하기 때문에 민간인 토지를 수용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동부간선도로라고 이름을 짓고 1년 안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사업을 추진했다.



 암초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건설부가 하천 범람 위험이 있다며 허가를 안 내줬다. 건설부 요청에 따라 수리모형시험(현장을 축소한 모형을 만든 다음 물을 흘려보내는 시험)을 하는 데 1년 더 걸렸다. 내가 서울시장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후 동부간선도로를 착공할 수 있었다.



 도로 교통난은 서울 동부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의 도로망은 도심에서 바깥으로 바퀴살처럼 뻗어나가는 방사형(放射形)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선진국 대도시와 달리 외곽과 외곽을 이어주는 고리형 순환도로(Ring road)가 없었다. 서울 외곽에서 다른 외곽 지역으로 가려는 차량의 절반 정도가 도심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야 했다. 시간도 많이 걸렸고 서울 중심가의 교통난을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서울시에 2개의 순환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내부순환도로는 서울시가 건설하고 외곽순환도로는 수도권 광역교통망을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중앙정부가 만든다는 분담안이었다. 이 안을 건설부에 제의했고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했다.



 내부순환도로의 노선을 정하려고 남산을 4번 넘게 올라갔다. 도심을 내려다보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당한 노선이 나오지 않았다. 도시 건조물 사이로 도로를 뚫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엄청난 보상비는 또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매일 고민을 거듭했다.



 어느 날 밤 관저로 돌아와 서재 의자에 앉았다. 저녁 자리에서 마신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책상 앞 벽에 붙어 있는 서울 도시계획 전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강변을 이용하자’.



 중랑천을 활용해 동부간선도로를 설계한 선례가 있었다. 한강의 북측 강변과 홍제천·정릉천 등 하천과 산악지를 최대한 활용한 도심순환고속도로의 설계가 완성됐다. 89년 9월 20일 서울시는 총 연장 40.1㎞의 내부순환도로를 건설하는 ‘서울 교통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보통 도로를 만들면 사업비의 90%를 토지 보상비로 쓴다. 하지만 내부순환도로는 총 사업비 1조2131억원 가운데 10%인 1226억원만 토지 보상비로 사용했다. 하천변과 산지를 이용한 설계로 예산을 절약할 수 있었다. 임명직 시장일 때 시작한 내부순환도로 공사는 민선 시장으로 돌아온 후인 99년 2월 홍은동 사거리와 마장동을 잇는 13.7㎞ 구간 공사가 끝나면서 마무리됐다. 현재 서울에서 교통 분담률이 제일 많은 강변북로는 내부순환도로의 한 구간으로 탄생했다.



 중앙정부가 담당한 수도권 제1 외곽순환도로는 착공 17년 만인 2007년 12월 완성됐다. 2개 순환도로가 완공되면서 서울의 도로망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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