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산 고혈압 신약, 국내 시장 안착 이어 글로벌 무대 공략

중앙일보 2013.05.30 03:50 주말섹션 1면 지면보기
경기도 안산에 있는 보령제약 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신약 후보물질을 찾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보령제약]



미국·유럽 등과 수출 계약 활발

제약산업은 창의성과 융합을 강조한 창조경제의 대표주자다. IT·바이오·제약 기술이 융합·창조해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약은 글로벌 혁신 신약으로 육성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약은 아마도 타미플루일 것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하면서 사재기 소동까지 벌어졌다.



※자료=미국심장의약저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잡는 이 약을 개발한 곳은 길리어드라는 제약사다. 재미 한국인 과학자인 김정은 박사의 주도로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스위스계 다국적제약사 로슈로 넘겨졌다. 이후 로슈는 타미플루로 세계적인 제약사로 성장하는 동력을 얻었다. 바로 글로벌 혁신신약의 힘이다. 중앙일보는 미래 대한민국을 움직일 제약사와 의약품에 대해 소개한다.



보령제약은 만성질환인 고혈압에 주목했다. 고령화 시대 건강 화두는 더 이상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다. 특히 만성질환은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세계보건기구(WHO)역시 인구고령화로 고혈압·당뇨병·관절염 같은 만성질환이 세계 질병의 7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중 고혈압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별다른 증상 없이 서서히 몸을 망가뜨린다. 이를 방치하면 어느 날 갑자기 좁아진 혈관을 피떡(혈전)이 막아 뇌졸중·동맥경화·심근경색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앓을 수 있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 10명 중 3명은 고혈압 환자다. 한국에서만 약 660만명이 고혈압을 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맞춰 개발한 약은 전무했다. 모두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 개발한 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의약품은 같은 약을 먹어도 약효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특성이 있다. 사람마다 유전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종간 차이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좋은 약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한국인에게 최적화한 고혈압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나온 결과가 바로 ‘카나브(Kanarb, 성분명 피마살탄)’인 것이다. 국산 첫 고혈압치료제의 탄생이다. 카나브는 러시아어로 황자를 뜻하는 칸(Khan)과 ARB(최신 고혈압 치료제 계열)의 합성어다. ARB계열 고혈압 치료제 중 가장 으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카나브를 개발한 보령제약의 자신감을 나타낸 이름이기도 하다.



 카나브는 혈압을 높이는 효소의 활동을 막는 방식으로 혈압을 낮춘다. 보령제약은 1998년부터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연구개발에 집중했다. 후보물질 합성을 위한 연구개발 시간까지 포함하면 기간은 더 길어진다. 여기에 약 개발에만 들어간 투자 금액은 약 5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인 대상 대규모 임상데이터 확보



이렇게 개발한 카나브의 약효는 기대 이상이었다. 임상시험 결과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다른 고혈압치료제(로살탄 계열)와 비교해 20% 이상 높은 혈압강하 효과를 보였다. 약을 먹을 때 생기는 염증을 줄여 장기(신장·간)가 손상되는 부작용도 없었다. 특히 한국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 약효를 입증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규모 임상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보령제약은 올해 1월 최대 규모로 실시한 카나브 임상 4상(실제 복용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을 완료했다. 한국인 1만41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이다.



 그 결과 카나브를 복용한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 혈압은 18.7bpm(145.4bpm→126.8bpm), 이완기 혈압이 9.7bpm(88.7bpm→79.0bpm), 맥박은 2.5bpm(74.4bpm→71.9bpm) 감소했다. 특히 처음 고혈압으로 진단받아 카나브를 복용한 환자뿐만 아니라 약을 추가하거나 변경한 고혈압 환자 모두에게 두 자릿수 이상의 혈압강하 효과를 보였다. 해외에서 개발한 글로벌 고혈압 신약과 비교해 카나브의 약효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복약순응도도 우수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해도 환자가 이를 제대로 복용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 복약순응도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 처방을 했을 때 제대로 복용하는지를 나타내는 용어다. 카나브는 98% 이상의 환자에게서 긍정적인 복약순응도가 나타났다. 이번 카나브 임상시험 결과는 1월 국제 의학저널인 미국심장의약저널(American Journal of Cardiovasular Drugs)에도 소개됐다.



국산 고혈압 신약, 중남미 13국에 수출 계약



보령제약 고혈압신약 ‘카나브’
카나브는 국내 고혈압 시장에 안착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매출도 긍정적이다. ‘국산 신약은 시장성이 없다’는 그 동안의 평가를 뒤집은 것이다.



 카나브는 발매 첫해인 2011년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전년대비 100% 성장한 20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화학 합성 신약 중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성공 신약으로 자리매김한 것. 보령제약은 올해 5월 카나브-이뇨복합제를 발매하면 국내 매출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카나브는 한국 제약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제품”이라며 “발매 3년차인 올해는 매출 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개발한 신약 중 매출이 단기간에 성장한 제품은 없었다.



 보령제약은 카나브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카나브 임상·마케팅·해외진출을 전담하는 조직도 신설했다. 글로벌 고혈압 신약으로서 카나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다.



 카나브는 이미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13개국·브라질·러시아 등에 총 886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올해도 중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를 포함해 미국·유럽 등에 수출계약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중 미래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주목받는 중국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태홍 사장은 “카나브는 지금까지 개발한 국산 신약 중에서 가장 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약”이라고 말했다. 카나브는 2011년 12월 지식경제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기술대상에서 ‘10대 신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보건신기술(NET)·우수보건제품 품질인증(GH)을 획득하면서 약효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조그만 알약 한 알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전통 제조업 못지 않다.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는 한 해 동안 120억 달러(한화 약 14조원) 이상 팔렸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규모의 30%에 해당한다.



2020년까지 국내시장 30% 점유 목표



보령제약의 중장기 목표는 더 야심차다. 우선 카나브 발매 10년차인 2020년까지 국내 고혈압 시장의 30%을 점유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카나브 복합제 연구개발도 계속 진행 중이다. 2014년 경에는 현재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카나브-CCB복합제를 발매한다. 또 2020년 후에는 카나브-고지혈증 복합제, 카나브-당뇨병 복합제 등도 개발해 시판한다는 목표다. 최 사장은 “카나브는 기존 국산 신약이 보여줬던 시장성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다”며 “글로벌 신약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