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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김남일 … 그 뒤엔 무한 신뢰 허정무

중앙일보 2013.05.30 00:42 종합 29면 지면보기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왼쪽)은 3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애제자 김남일에게 꽃을 선물했다. 36세라는 늦은 나이에 재발탁된 김남일에게는 든든한 스승 허 부회장이 있었다. 허 부회장이 대표팀 감독 시절인 2008년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앞두고 김남일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얘기가 나오자 허탈하게 웃었다. 허정무(58)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2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고 털어놓았다. 허 부회장이 사령탑을 맡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나이지리아와 경기. 후반 교체 투입된 김남일(36·인천 유나이티드)이 페널티 지역에서 상대 공격수의 돌파를 저지하려던 순간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나이지리아에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앞서던 한국은 2-2 동점을 허용했다. 그리스가 아르헨티나에 져 한국은 구사일생으로 16강에 진출했지만 김남일의 실수는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허 부회장은 “그래도 남일이는 실수보다 공헌이 많았다. 만약 그때 16강에 가지 못했더라도 그건 감독인 내 책임이었다”고 단언했다.

반대 여론 속 남아공 월드컵 발탁
PK 허용 실수에도 인천으로 영입
재기 발판 마련, 대표팀 복귀 도와



 허 부회장에게 최고령 국가대표 김남일은 특별한 제자다. 허 부회장은 1998년 시드니올림픽(2000년) 대표팀을 꾸리며 한양대의 김남일을 발굴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허 부회장은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치명적인 실수에도 2012년 당시 사령탑으로 있던 인천으로 김남일을 불러들였다. 허 부회장은 인천을 떠났지만 김남일은 인천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남아공 월드컵 이후 3년 만에 대표팀에 발탁됐다.



 허 부회장은 김남일의 첫인상을 “눈이 크고 순진했던 청년”으로 기억했다. 그는 “그땐 지금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 선수들이 다 그렇듯 말이 없고 온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남일은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달라졌다. 순진해 보였던 큰 눈에 투지가 가득했다. 허 부회장은 “그라운드에선 남일이의 열정을 따라갈 선수가 없었다. 경기 조율이나 패스 등 능력도 뛰어났지만 상대 선수를 압도하는 투지, 동료들을 독려하는 힘은 누구보다 앞섰다”고 전했다.



 김남일을 남아공 월드컵에 발탁할 당시 여론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김남일은 2008년 9월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페널티 지역에서 핸드볼 파울로 북한에 선제골을 내준 전력이 있었다. 당시에도 적지 않았던 김남일의 나이(33세)도 걸림돌이었다. 김남일이 남아공 본선에서 실수를 하자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구자철·이근호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90분을 뛰어줄 평범한 선수(당시 기준으로)보단 20~30분을 뛰어도 A클래스의 능력을 발휘해줄 선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허 부회장은 “남일이는 타고난 카리스마를 가졌다. 카리스마가 그리스어로 ‘신의 은총’이라고 하더라. 노력한다고 해서 아무나 얻을 수 없다는 것 아니겠나. 기성용과 구자철이 빠졌지만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김남일답게 해라.” 스승의 말에 오랜 애정이 묻어났다.



손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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