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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설립 미 예일대 수학과 한국인 오희 첫 여성 종신교수에

중앙일보 2013.05.30 00:39 종합 30면 지면보기
오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연히 의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입학력고사 점수가 낮게 나왔다. 2지망으로 쓴 서울대 수학과에 합격했지만 ‘계속 학교에 다녀야 할까’ 방황했다. “일단 공부를 해보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지도 교수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억지로 시작한 수학 공부. 하지만 눈이 번쩍 뜨였다. 몰랐던 수학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1992년 대학 졸업 뒤 미국으로 갔다. 97년 예일대 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브라운대 교수(2006년)가 됐다.


2지망으로 서울대 수학과에 “돌이켜 보면 그게 내 운명”

 유학을 떠난 지 21년,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인 예일대 수학과의 종신(테뉴어) 교수가 됐다. 1701년 설립된 예일대의 수학과에 여성 종신교수가 임용된 것은 처음이다. 고등과학원 수학부 오희(44) 교수 얘기다. 그는 2008년부터는 고등과학원 교수도 겸직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수학단체인 미국수학회(AMS) 펠로로도 활동한다. 오 교수는 “끔찍해서 피를 못 보는 성격이다. 의대에 합격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우연히 수학을 전공하게 됐지만 돌이켜 보면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7월부터 예일대에서 근무하게 된 오 교수를 28일 전화 인터뷰했다.



 - 원래 수학을 좋아했나.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수학을 하는 직업(수학자)이 있다는 건 몰랐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 2지망으로 수학과를 택한 건 오빠(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오상범씨) 때문이었다. 오빠가 아는 교수님께 내 진로를 여쭤보니 ‘젊은이들이 기초과학을 많이 전공했으면 좋겠다’며 권하셨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였다.”



 - 수학의 어떤 점이 좋나.



 “캄캄하던 방에 갑자기 불이 들어오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방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모든 궁금증이 일시에 풀린다.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은 그것과 비슷하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찾아가는 성취감이 수학의 매력이다. 완벽한 수학이론은 색채·구조가 완벽한 예술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남자가 여자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통념이 있는데.



 “틀린 얘기다. 수학자는 여성이 정말 좋은 직업이다. 다른 이공계 전공은 실험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지만 수학자는 공부할 책상만 있으면 된다. 물론 여자보다 남자 수학자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가 남성적이다. 여자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유학시절 언어 장벽은 없었나.



 “있었다. 하지만 유학을 갈 때부터 언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언어는 전공 공부를 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든 내 (못하는) 영어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영어를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아무도 내 말에 주목하지 않는 것 아닌가. 지금도 학생들 가르치는 정도밖에 영어를 못한다(웃음).”



 - 요즘 연구하는 주제는.



 “기하학 같은 수학의 고전적인 영역의 문제를 동역학(動力學·dynamics) 같은 새로운 방법론으로 풀고 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 중에도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많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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