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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톨레랑스인가 역지사지인가

중앙일보 2013.05.30 00:33 종합 32면 지면보기
진형준
홍익대 불문과 교수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대학 여제자와 카페에 마주 앉아 나눈 대화 한 토막이다.



 “선생님, 파리 젊은애들 이혼율이 얼마인지 아세요?” “글쎄, 꽤 높은가 보지?” “70%나 돼요.”



 결혼하지 않고 합의 동거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프랑스 파리에서 어렵사리 결혼에 골인한 친구들도 열 명 중 일곱 명이 이혼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의 청춘이혼율도 50%나 된다고 그 친구는 덧붙였다.



 우리는 왜 그리 이혼율이 높은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농담처럼 애들이 너무 합리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생각해 봐라. 제 아무리 오랫동안 해로한 것 같은 부부라도 살면서 얼마나 많이 티격태격했겠니? 얼마나 자주 서로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니? 그런데도 그냥 견디고 참으며 산 거야. 참 비합리적이지? 그에 비해 파리 젊은이들은 얼마나 합리적이니? ‘우리가 서로 싫어하면서 함께 사는 것은 모순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싹 돌아서지. 얼마나 자유롭고 합리적이야.” 조금은 시니컬한 내 말을 그 친구도 이해를 한 것 같았다. ‘점점 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그만큼 합리적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인가’라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마 파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톨레랑스(tol<00E9>rance)의 덕목이 사라져 가기 때문일지도 몰라.”



 프랑스 사회가 자랑하는 덕목으로 많이 알려진 톨레랑스는 동사 tol<00E9>rer(참아내다. 견뎌내다)의 명사다. 그러니까 톨레랑스는 개인주의 사회의 미덕에 속한다. 나와 타인은 서로 독립된 개인이다.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남과 다른 의견과 인격을 각자 갖추고 있으니 아무리 역겹거나 싫더라도 참아낼 것, 서로 존중하며 공존할 것, 이것이 톨레랑스의 기본정신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톨레랑스가 사라지면 각자 미련 없이 남남이 되기 쉽다.



 톨레랑스보다 더 적극적인 덕목의 하나가 바로 역지사지 다. 나와는 다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역지사지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려면 내 속의 남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의 덕목은 나와 남이 연결돼 있다는 동양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래서 정(情)이 강조된다. 역지사지가 덕목인 사회에서 그 덕목이 사라지면 고집과 강요와 권위만 남는다. 깨끗이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부부간에 필요한 덕목은 톨레랑스가 아니라 역지사지라는 것을 그 친구에게 역설한 것 같다. “제아무리 잉꼬부부처럼 보여도 마냥 잘 지내기만 한 건 아닐 거야. 얼마나 수없이 어려운 일을 겪고, 싸우고 미워하고 후회하고 덮어두고 그랬겠니? 그런 가운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해 온 거겠지. 금실이란 것은 그렇게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 아니겠니?”



 귀국 얼마 후에 그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안 끝에, 내가 전해주고 온 졸저 『공자님의 상상력』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한국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후 모든 것을 잊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일찍 프랑스로 왔지만 자신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유교식 교육을 시키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쉽게 이혼하는 파리의 젊은이들에게 그 책을 꼭 읽히고 싶어졌다는 고마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마 톨레랑스가 사라져가는 파리의 젊은이들에게 톨레랑스의 회복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역지사지로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경제적 양극화, 지역·세대 간 갈등의 문제를 안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톨레랑스의 미덕인가, 아니면 역지사지의 미덕인가? 우리는 개인주의자들인가, 정실주의자들인가? 우리는 깨끗이 갈라설 수 있는 사이인가, 아니면 어차피 함께 맺어진 사이인가? 그 친구의 메일을 받고 내게 떠오른 질문이다.



진 형 준 홍익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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