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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유발 바이러스 발견, 존재하지 않는 시장 창조

중앙일보 2013.05.30 00:31 경제 7면 지면보기
하랄트 추어하우젠 박사가 29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1회 호암포럼에 첫 연사로 나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 삼성서울병원]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타 과학자’ 하랄트 추어하우젠(77) 박사가 29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에서 ‘바이러스와 암’을 주제로 강단에 섰다. 올해 출범한 호암포럼의 첫 연사다. 호암포럼은 삼성그룹이 창조경제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추진 중인 ‘노벨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최근 노벨상 수상 연구가 주로 국가 간 공동연구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한 삼성이 한국인 석학들의 국제 연구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했다.

제1회 호암포럼 개막
노벨상 수상 추어하우젠 첫 강연
"쇠고기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 대장암 발병률 높일 가능성"



 50여 분간 진행된 추어하우젠 박사의 강연은 시종일관 참석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암이 발생한 환자의 21%는 감염과 관련됐고, 감염 건수의 38%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하지만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의 경우 감염된 뒤 15~25년이 지나야 자궁경부암을 일으키고, B형 간염바이러스는 30∼60년 뒤에나 간암을 일으키는 만큼 인과관계를 따지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말했다. 수십 년이 지나 암을 일으키는 만큼 연구를 위해서는 인내심과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위트를 덧붙였다.



 추어하우젠 박사는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찾아 헤맨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0년 독일 뒤셀도르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70년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가 암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는 증거를 찾아냈고, 83년과 84년에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 두 종을 발견했다. 자궁경부암과 HPV의 연관성을 입증한 공로는 20여 년 뒤 그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겨줬다. 그는 희수의 나이에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암연구소에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수행중이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쇠고기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10여 년간 지켜본 결과 쇠고기와 같이 붉은 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에서 대장암 발병률이 높은데, 이런 결과는 쇠고기 때문이 아니라 쇠고기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 때문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추어하우젠 박사는 “서구는 물론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쇠고기를 덜 익혀 먹거나 육회로도 먹는 국가에서 대장암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쇠고기를 바싹 익혀 먹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닭고기와 같이 하얀 고기를 주로 먹는 나라에서는 대장암 발생빈도가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가 주로 감염되는 TT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할 경우 대장암을 일으킨다고 보고 증거수집에 나섰다. TT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을 인간의 대장암 조직 내에서 찾아봤으나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추어하우젠 박사의 가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쇠고기 속에 숨어 있는 TT바이러스가 열에 강한 만큼 충분히 익혀 먹어야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HPV를 발견한 추어하우젠 박사의 기초과학 연구는 산업 면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암 가운데 두 번째로 발병률이 높다. 추어하우젠 박사 덕에 자궁경부암 진단장비라는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졌다. 암 조직의 모양을 보고 뒤늦게 진단하던 시대에서 HPV의 DNA를 찾아내 조기 진단하는 방식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또 자궁경부암 백신의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 머크와 영국 GSK가 15년간 각각 1조원에 가까운 연구비를 투자해 HPV에 대항하는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머크는 2006년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세계 최초의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가다실’을 탄생시켰다. 그해 가다실은 타임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가다실은 전 세계에서 16억3000만 달러(약 1조8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조’한 것이다. 가다실 이후 GSK도 같은 백신인 ‘서바릭스’를 출시하며 추격에 나섰다.



 이처럼 노벨상 수상자의 아이디어가 창조경제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자는 것 또한 삼성의 숨은 의도다. 삼성은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화답해 앞으로 10년간 총 1조5000억원 규모의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키로 했다. 재단의 목표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목표다.



심재우 기자



◆ 호암포럼



노벨상·카블리상·필즈상 등 해외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석학들과 호암상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올해 첫 포럼은 호암재단·삼성서울병원·삼성종합기술원이 주관했다. 이처럼 최신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에서는 다른 부문과 융합 연구가 제안되기도 한다. 호암포럼은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올해의 경우 첫날은 의학 부문에서 진행됐고 둘째 날인 30일에는 공학 부문의 ‘나노’를 주제로 이어진다. 제3의 고체인 결정 물질을 최초로 발견해 20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셰흐트만 박사, 나노과학 연구로 지난해 호암공학상을 수상한 현택환 서울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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