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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무림 공적 검은 머리 외인 봉수 묘책 찾아라

중앙일보 2013.05.30 00:28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검은 머리 외인(外人)’이 언제부터 증권 무림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게 됐던가? 증권 무림의 개미들이 결코 잊지 못하는 날, 그날부터다. 무력(武曆) 92년 정월 초사흘, 벽안금발(碧眼金髮)의 무리들은 이날 중원의 문을 열어젖혔다. 앞장은 아름다운 나라-미국의 무사들이 섰다. 당장은 금역(禁域)을 정해 그곳에서만 무예를 펼치도록 했지만, 중원의 무사들은 누구나 예감하고 있었다. 머지않은 날, 벽안 무공이 결국 중원을 휩쓸게 될 것이란 사실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라던가. 6년여 뒤. 무력 98년 오월 ‘벽안 무공 무차별 허용법’이 통과됐다. 퀀트권(拳)·아비트리지장(掌)에서 공매도 초식까지…. 벽안금발은 첨단 내공과 신기막측한 초식으로 증권 무림을 휘저었다. 그간 꽁꽁 문을 닫아걸었던 증권 무림이 그들 손에 떨어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개미가 벽안의 칼날 아래 쓰러졌던가. 왕개미, 수퍼개미, 기관개미까지 속수무책이었다. ‘외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떨어진다’, 벽안금발의 전설이 쓰여진 것도 그때다.



 강자존(强者存)의 무림, 무릇 세가 강해지면 추종하는 무리가 생겨나는 법. 처음엔 좌도사파라며 경계하던 개미들 중 벽안 무공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외인 따라 하기 초식’이 등장하더니, 이 초식은 곧 무림 입문자 필수 과목이 됐다. 지금은 절정고수들도 즐겨 쓴다. 그뿐이랴. 웃돈을 주고라도 외인의 수법을 알아내려는 이들도 생겼다. 몇몇 증권 무림 언론은 ‘외인 무공의 모든 것’ ‘외인은 뭘 사고 뭘 팔았나’ ‘외인 초식 정석’ 등의 잇따른 기획물을 실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기도 했다.



 문제의 ‘검은 머리 외인’ 무리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것도 이때다. 이들의 수법은 이랬다. 정통 중원 무공으로 개미를 끌어들인다. 개미들의 내공을 모아 해외로 보낸다. 벽안 무사의 이름을 빌려 가공의 ‘종이문파’를 세운다(요즘 말로는 페이퍼컴퍼니라 부른다). 그러곤 금발을 휘날리며 가짜 벽안 무공으로 중원을 활보한다. ‘주가 띄우기 공’ ‘오너 배불리기 초식’ ‘개미 거덜내기 술(術)’을 즐겨 쓰되 당하는 이들은 영문, 속절도 모르기 일쑤다.



 무력 2013년 오월. ‘검은 머리 외인’의 실체가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증권 무림의 내로라하는 대문파들까지 가세한 사실이 확인됐다. 케이맨·바하마 군도의 종이문파에서 증권 무림으로 흘러온 자금만 약 39조원이다. 중원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들의 무공을 영원히 봉수(封手)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미 증시는 깊이 중독됐고, 무림엔 미혼술에 취한 개미들이 넘쳐난다. 중원이 위험하다. 무림을 구할 별, 무림 구성(救星)은 어디 있는가.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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