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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금융지주 CEO 선출은 사외이사 '그들만의 리그'

중앙일보 2013.05.30 00:18 경제 3면 지면보기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금융권이 분주하다. 앞으로 수년간 한국 금융을 이끌어 갈 차기 금융지주 회장들이 속속 결정되고 있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선 과정은 격세지감이다. 정부의 노골적인 낙점 인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신 금융그룹마다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가 가동된다. 회추위 구성과 방식은 회사마다 다르다. 외견상 ‘관치’에서 ‘자율’로의 진화다. 그러나 현재의 회장 선출 과정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KB, 회추위원 9명 전원이 사외이사



 KB금융그룹의 경우 회추위는 9명이다. 회추위원들은 모두 사외이사들이다. 사외이사들이 그대로 회추위 멤버가 되는 것이다. 외부 인사는 없다.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다. 요즘 KB 회추위에는 좋은 인물을 뽑아야겠다는 각오가 어느 때 못지않게 단단한 것 같다. 지난 3년간 KB금융은 부진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금융권 최강자였던 KB금융은 자산규모 4위(283조원)로 미끄러졌다. 증권과 보험 같은 비은행 부문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한·우리 등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은행의 비중이 현저히 높다. 국민은행 자산(258조원)이 KB금융의 91.2%나 된다. 이런 상황은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됐다. 29일 현재 KB 주가는 3만7600원으로 3년 전보다 23% 빠졌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금융 주가는 같은 기간 30% 가까이 올랐다. 국민들 노후의 버팀목인 국민연금도 KB 주가 하락의 피해자 중 하나다. 익명을 원한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중 KB 주가가 가장 많이 떨어져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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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실적 부진은 일차적으로 경영진의 책임이다. 그렇지만 사외이사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외이사의 중대한 책무 중 하나가 주주이익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진을 감시·견제하고 주요 경영전략 결정에 참여한다. 하지만 사외이사 가운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는 없다. 올해 사외이사 9명 가운데 8명이 유임됐다. 5년 임기가 만료된 함상문 이사만이 김영과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으로 교체됐을 뿐이다. 사외이사들이 서로를 재추천해서다. 현재 사외이사들 가운데 4명은 어윤대 회장을 뽑았던 이들이다.



농협금융 회추위엔 중앙회 영향력 커



 한편에선 농협금융지주가 회장 선출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회추위는 외부 전문가 2명과 사외이사 2명, 농협중앙회장 추천 1명 등 5명으로 구성됐다. 신동규 회장의 사표 파문으로 번진 중앙회의 경영 간섭, 농협금융과 중앙회의 갈등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 없이 차기 회장 선출만 속전속결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회추위는 중앙회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금융계에선 벌써부터 “최원병 중앙회장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인물이 선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당국 개선안은 선출 끝난 후에야 나와



 이런 상황을 꿰뚫고 있을 감독당국의 행보는 속도감이 떨어진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주주 대표성과 공익성이 조화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해 6월 중순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이미 KB금융과 농협금융의 새로운 회장 선출 일정이 마무리된다. 회장 임기(KB금융 3년, 농협금융 2년)를 감안하면 금융위 개선안은 앞으로 수년간 회장 선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뒷북을 쳤다”는 혹평을 받을 소지가 있다.



 경영학에 ‘대리인 문제’라는 용어가 있다.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이 문제를 일으켜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사실 사외이사는 주주들의, 농협중앙회는 농민들의 대리인이다. 회장을 뽑는 일도 권한을 맡겨준 주주와 농민들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배경이나 연줄 센 인물 말고 경영을 잘할 사람을 고르면 된다.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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