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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부부 강간 가중처벌, 어떻게 봐야 하나

온라인 중앙일보 2013.05.26 10:01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지난 16일 대법원이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된다”며 판례를 변경했다. 특히 법 개정으로 올 6월부터 친족 강간의 대상에 배우자도 포함됨에 따라 부부 강간을 가중처벌하게 된다. 이를 놓고 “가정 내 성폭력을 막기 위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이 가정 해체를 부를 수 있다”는 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지속적·반복적 성폭행은 더 큰 상처 남긴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부부 강간(marital rape) 또는 배우자 강간(spousal rape)은 단순히 부부간의 성적 갈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를 굴복시키고, 자존심을 해치며, 폭력적 지배가 강간이란 형태로 부부간에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즉, 구타 후 강간은 물론 강압적 성행위, 원치 않는 혹은 가학적인 성행동, 별거 중 강간까지를 포함한다. 현실적으로는 아내가 피해자인 아내 강간(wife rape)을 일컫는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강간죄의 객체에 ‘아내’가 포함되는가 하는 논란은 끝맺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가해자인 남편에게 징역 3년6월에 정보공개 7년,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10년이 선고됐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특수강간의 기본형에도 못 미치는 처벌”이라고 비판한 반면 일부 법조인들은 “이번 판결이 이혼 소송 과정에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아내를 친족에 포함시킨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오는 6월 19일부터는 아내 강간도 친족 강간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게 돼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아내 강간을 일반강간죄 처벌 규정이 아닌 친족 강간 처벌규정에 따라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적정한 것이냐는 물음이다.



 친족간 성폭력을 가중처벌하는 것은 친족 관계로 인해 그 피해가 지속적·반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 애정과 신뢰가 기본이 돼야 할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란 점에서 그 신체적·심리적 피해가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아내 강간’ 피해자들은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보다 지속적·장기적으로 강간의 피해를 당한다. 2010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성학대 발생률은 70.4%로 대부분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년에 20회 이상 성관계를 강요하는 경우가 19.7%, 1년에 20회 이상 원치 않는 성행동을 강요한 경우가 14.7%로 나타났다. 성적 학대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이루어진다면 한번 발생한 성폭력보다 더 가중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쉼터를 이용한 한 여성은 구타 후 이루어지는 성폭력에 대해 “마치 내가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었다”라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5년 가정폭력 피해자의 남편 살해 사건을 지원한 바 있다. 해당 여성은 고통의 시간들을 이렇게 증언했다. “남편은 포르노를 보면서 나에게 이상한 체위를 요구했어요. 못한다고 하면 폭력을 썼어요. 그래서….”



 아내 강간 피해자들은 끔찍한 신체적 폭력도 견디기 힘들지만 그 후에 이루어지는 강제적 성관계는 더욱 견딜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가해자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그 고통이 배가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 강간은 다른 강간보다 더 가중처벌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제야 처벌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현실에서 가중처벌의 폐해를 거론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처벌의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여성은 아내이기 이전에 ‘사람’이며 자신을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는 인권의 기본이다. 그 인권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우선돼야 한다.



정 춘 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 과도한 형량은 가정 해체 양산할 것이다



오경식
국립 강릉원주대 교수
한국비교형사법학회 회장
대법원의 부부 강간죄 인정으로 배우자 간의 성관계도 형사 처벌이 가능해졌다.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과 부작용은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우선 이번 판결이 법 제도 변화와 맞물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들여다보자. 법 개정으로 6월 19일부터 친고죄가 사라지고, 부부 강간죄는 징역 7년 이상(일반 강간죄는 징역 3년 이상)으로 가중 처벌된다. 징역 7년 이상이면 감경을 하더라도 3년6월의 형을 선고받게 되므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이제는 수사기관이 배우자의 고소·고발 없이도 적극적으로 부부 강간을 찾아내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부부라는 이유로 가중 처벌한다는 것은 처벌의 불균형은 물론 해석의 혼란을 일으키고 법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웃 주민이 폭력으로 의심되는 비명을 듣고 경찰에 신고하면 부부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내가 “과거 가정폭력과 함께 강제적 성관계가 있었다”고 진술할 경우 그 순간 수사 방향은 가정폭력에서 부부 강간으로 바뀌게 된다. 나중에 부부가 아무리 애원해도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이웃의 신고가 엉뚱하게도 부부 강간 수사의 단서로 돼버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살벌하고 무서운 세상이다. 물론 가정폭력은 사라져야 하지만 부부 강간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성폭력특례법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건강한 사회 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일반 형법보다 가중 처벌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은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가정의 안정, 혼인의 존중이란 이념, 즉 혼인과 가정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가정을 회복시키는 역할이 아닌 가중 처벌의 목적으로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경우 자녀의 미래를 위한 기반인 가정이 해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장기간의 수감생활과 신상정보 공개 및 전자발찌 부착 등으로 정신적·문화적·경제적 어려움과 충격을 가족 모두가 함께 안고 가면서 혼인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국 그 가정은 파탄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의 결혼관 또한 큰 변화가 예상된다. 혼인을 기피할 것이며, 이혼이 증가할 것이다. 이번 판결은 형법적 판단이지만 가사·민사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자료 액수를 높이고 재산 분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혼사건이 결국 부부 강간사건으로 변질되고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이 부부 강간죄를 인정한 논거는 ‘법률상 처(妻)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혼인 유무와 관계없이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법률상 배우자가 있는 자에 대해 배우자 아닌 사람과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간통죄로 처벌한다. 대법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혼인으로 인해 제한된다”면서 그 이유를 혼인에서의 동거 의무에서 찾고 있다. 대법원이 부부 강간죄와 간통죄에서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나온 대법원 판결은 너무 성급한 것이었다.



 실질적 혼인관계 여부를 판단해 실질적 혼인관계가 깨어진 경우 부부 강간을 인정하고, 실질적 혼인관계가 지속 중인 때에는 부부 강간을 가정폭력 범죄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길이다.



오 경 식 국립 강릉원주대 교수 한국비교형사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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