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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어깨인 듯 듬직한 나무 기둥 감칠맛 나는 비례

중앙선데이 2013.05.24 23:51 324호 22면 지면보기
1 고려 충렬왕 34년 1308년에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된 수덕사 대웅전. 유일하게 설립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이다.
2,3 목가구 구조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덕사 대웅전의 측면.
봄꽃이 찬란한 사월이 가고 너나없이 푸르게 새 잎으로 가득 차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되면 산 속에 있는 절집들은 일 년 중 가장 부산해지는 시기를 맞는다. 올해 초파일은 불기 2557년 석가탄신일. 점점 화려해지는 연등의 배열로 마당 위에 햇빛은 부서져 내리고, 성수기를 맞아 부쩍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과 우리나라 아웃도어인(?)들은 촘촘한 연등처럼 넓었던 사찰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마음먹고 찾아간 충남 예산 수덕사. 그 번잡스러운 장터 분위기에 성(聖)과 속(俗)의 구분은 어느새 무의미해진다.

최명철의 집 이야기 <21>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는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어 유일하게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이다. 고즈넉했던 추억 속의 수덕사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내가 좋아하는 대웅전만 그나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이 지역을 다녀가면서 누리게 되는 풍성한 먹거리의 즐거움이나 온천욕의 감미로움도 빼놓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를 이끄는 건 대웅전이 전달하는 청량함이다.

수덕사가 위치한 이곳 내포 지방은 4대 강 수계 지역과 무관하게 금북정맥(錦北正脈) 또는 차령산맥을 경계로 구분되는 독자적 지역이다. 한강에서 밀려나 금강을 중심으로 터를 잡게 된 백제는 이곳을 중심으로 인도·중국 등과 많은 교류를 했다. 자연 불교 전래의 근거지가 되었다. 가야산을 조산으로 덕숭산을 배산하는 수덕사의 형국이 아산·예산·덕산·서산 등지를 잇는 중심 거처가 된 연유다.

4 대웅전 처마, 맞배지붕의 담담하고 단순한 선들. 집안 내부가 잘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5 널찍한 어깨 같은 기둥 구조의 비례는 보면 볼수록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대웅전은 대웅(大雄), 말 그대로 석가모니의 집이다(참고로 무량수전이나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곳이다). 이 집의 청량함은 평범하게 보이는 구성에서부터 나온다. 비교적 넓어 보이는 정면 세 칸의 나무 기둥 4개가 자못 무겁게 흘러내리는 기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다. 맞배지붕의 단순한 선들이 담담하게 놓이면서 집안 내부가 잘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처님의 널찍한 어깨 같은 기둥 구조의 비례는 보면 볼수록 감칠맛을 준다.

특히 절 안에 들어가려 옆으로 돌아 측면을 바라보는 순간, 말을 멈추게 된다. 옆 모습의 그 고졸(古拙)한 아름다움이란…. 가장 최고의 경지는 즐기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는데, 우리나라 목가구 구조의 아름다움을 이처럼 즐거이 온통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은 700여 년의 시간을 꿰뚫고도 여전히 생생하다.

문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서면 마룻바닥의 듬직한 감촉에 향내와 섞여져 풍기는 오래된 목재의 묵은 냄새, 그 속에서 한눈에 꽉 들어차는 부처님은 오래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 할아버지처럼 내 눈높이에서 이제 오느냐고 미소 짓고 있다. 좌우에 있는 협시불 또한 염화시중의 미소로서 잔잔한 공간을 향기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 위로 시원스레 드러나 있는 목가구 구조 그대로의 내부 모습은 집 안팎의 경계를 허물면서 무념무상의 불교교리처럼 시공을 넘나드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집은 집일 뿐이고, 기둥과 지붕의 단순하지만 격조 있는 구성 속에 우리는 잠시 머물러 있을 따름이며, 깨달음의 말씀은 그저 야단법석(野壇法席)인 자연 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21세기 신의 집은 어떤 곳일까
우리나라는 종교의 나라인 것 같다.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교, 유럽의 천주교, 미국의 기독교 등 세계적인 종교들을 골고루 진정성 있게(?) 계승하고 유지 발전시키고 있는, 지구상에서 아마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때로는 원조 나라들보다 더욱 깊은 종교적 성취들로 명성을 얻기도 한다.

산이란 산에는 대부분 사찰이 있고 흩어져 있는 암자들까지 헤아리면 이른바 ‘부처님의 집’으로 가득하다. 도시는 어떤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십자가가 있고 상가 건물에 있는 ‘하나님의 집’까지 도시의 밤하늘을 잔뜩 메우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축의 역사는 ‘신(神)의 집’에 의해 쓰였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부터 서양 건축의 역사는 시작됐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 중심부에는 광장에 면한 대성당 두오모가 있다. ‘하느님의 집’으로 대표되는 서양 건축은 이처럼 돌집(石造)의 역사다. 반면 동양의 집은 나무집(木造)의 역사다.

영국의 전래동화 ‘아기돼지 삼형제’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다 읽는다. 첫째 돼지의 초가집과 둘째 돼지의 나무집은 게으름 탓이고 막내 돼지의 돌집은 근면함과 성실함의 결과로 늑대를 물리칠 수 있다. 서양의 성공신화 근대화·산업화의 패러다임을 잘 전달해 주는 텍스트다. 이에 반해 근대화 패러다임에 도전하던 동양의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은 아직도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11월 19일 뮌헨에서 다음과 같은 교지를 내렸다.

“현대 교회건축은 바실리카나 로마네스크, 고딕이나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모방일 수 없다. 현대 성당건축은 우리 시대의 문화와 감성, 그리고 오늘날 가능한 재료와 수단을 활용하면서 오늘의 신앙에 그 형태와 표현을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신의 집’은 양식(style)을 잃었다. ‘하느님의 집’은 돌집으로서, ‘부처님의 집’은 나무집으로서 각기 최고의 건축 역사를 구현한 이래로 여전히 새로운 진화를 꿈꾸고 있는 단계다. 콘크리트·철·유리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재료와 수단’이 하느님이나 부처님에 대한 신앙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돌아가신 바오로 교황의 간절한 소망은 아직도 새로운 건축의 역사를 위해 비워진 채 남겨져 있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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