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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괴물이 돼 버린 사이트

중앙선데이 2013.05.26 02:53 324호 31면 지면보기
최근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흑백사진이 올라왔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한 어머니가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 희생자 시신 사진 등이다. 그런데 사진엔 이런 글이 붙었다. “우리 아들 택배 왔다 착불이요.” “홍어(호남 비하 용어) 일광욕하는 중.”

 유족들은 분노했다. 민주당은 일베 운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했다. 광주광역시는 역사왜곡·훼손사례 신고센터를 만들었다. 센터엔 하루 만에 400여 건이 접수됐다. 그런데 센터 사이트엔 이런 글도 올라왔다. “5·18은 폭동이야.” “나라 구한 전(두환) 장군 만세.” 일베 회원들이 쓴 조롱 글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4주기(23일) 전후엔 노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일베엔 노 전 대통령 사진에 코알라나 닭을 합성한 사진이 떴다. 한 대형마트 외주업체 직원은 그런 합성사진을 매장 TV 바탕화면에 띄웠다.

 일베 회원들의 몰상식한 언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안부 원정녀’라 부르고, ‘민주화’를 비하했다. ‘좌좀(좌파좀비:진보 비하)’ ‘김치X(여성 비하)’란 말도 만들었다. 이 사이트는 2010년 생겼을 때만 해도 보수 성향의 다양한 목소리를 분출하는 장소였다. 회원들은 놀라운 정보력도 과시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진보진영 후보의 문제를 캐냈다. 일부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덕에 하루 방문자가 2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이 사이트는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에게 이중의 상처를 주는 ‘괴물’이 돼버렸다.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난도 나온다. 사이트 광고 삭제 운동이 벌어진 데 이어 폐지 운동이 들끓고 있다. 이에 보수 논객 변희재씨는 24일 ‘광우병 거짓선동 주범들의 일베 죽이기’란 글을 썼다. 2008년 인터넷에 광우병 공포와 여대생 사망설을 퍼뜨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라 부르던 이들이 일베를 없애려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베의 존재 이유라고 강변할 수 없다. “너희도 잘못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논리여서다. 변씨는 일베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인정하는 네티즌들이 모인 사이트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화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진정 인정한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사이트 폐지가 해법은 아니다. 당장 일베를 없애도 제2, 제3의 일베가 생길 터다. 법적 대응 역시 무분별한 복제와 익명성의 공간인 인터넷 세상에선 한계가 있다.

 결국 더 이상의 갈등과 상처를 막으려면, 일베 회원들의 변화를 호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회복하라고 말이다. 오늘 던진 돌이 내일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를 세상이다. 이념·진영 갈등이 심화돼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마저 사라진 한국의 슬픈 자화상을 이젠 지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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