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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조각한 영산도, 흑산도에 가린 얼굴 내밀다

중앙일보 2013.05.24 03:30 Week& 6면 지면보기
영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석주대문` 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코끼리 바위`이다. 하지만 그동안 영산도의 것이 아니라 흑산도의 비경으로 알려졌었다. 동굴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흑산도다.


전남 신안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는 359개의 섬이 있다. 이 가운데 영산도라는 섬도 있다. 섬에 사는 사람 다 합쳐봐야 23가구 43명이 전부인 작은 섬마을이다. 외지 사람의 발길도 드물다. 영산도에서 배로 10분이면 닿는 흑산도에는 1년에 18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오지만, 이 섬에는 1년에 겨우 300∼500명이 들를 뿐이다. 흔한 바다 낚시꾼도 영산도에는 내리지 않았다.

명품마을로 재탄생한 인구 43명 '무명의 섬'



지난해 이 작은 섬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허물어졌던 돌담이 바로 세워졌고, 흉물처럼 버려졌던 폐가가 번듯한 민박집으로 탈바꿈했다. 낙서로 지저분했던 담벼락은 꽃 그림으로 화사해졌고, 시멘트 깔린 보도 위에는 춤추는 나비 그림이 얹혀졌다. 황량했던 갯마을은 시나브로 생기가 돌고 있다. 섬은 생태관광 마을로 변신 중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명품마을’ 조성사업 덕분이었다.



1 명품 마을로 지정된 후 영산도 중앙에 만들어 놓은 청보리밭.
2 영산도로 가기 위해서는 흑산도에서 배를 갈아 타야한다. 흑산도에 내리면 영산도행 선착장 안내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나주 영산포와는 뗄 수 없는 관계



영산도는 ‘무명의 섬’이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불과 3㎞ 거리인 흑산도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고, 섬만 1004개가 있다는 신안군의 다른 섬들에 묻혀져 있었다. 영산도 입장에서는 사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영산도는 흑산도의 부속 섬 100개 중 하나다. 행정구역상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리(里). 옛날부터 그냥 통칭해서 흑산도라고 불렀다. 영산도에서 나는 것들은 이 섬 바깥에서는 모두 흑산도의 것으로 통했다.



대표적인 것이 홍어다. 홍어 하면 흑산도를 떠올리지만 영산도 사람들은 “홍어잡이는 아주 오래 전 영산도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전해오는 기록이 없어 영산도 쪽의 일방적인 주장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영산도에서는 영산도야말로 홍어잡이의 원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흑산도 배 7척과 홍도 배 1척만 허가를 받아 홍어를 잡을 수 있다. 홍어잡이에 영산도는 끼지 못했다.



최성광(47) 영산도리 이장이 “내가 어렸을 때는 영산포구에 홍어잡이 배가 많았다”며 “홍어잡이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형 둘을 잃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그는 영산도 흥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삭힌 홍어 거리로 유명한 전남 나주의 영산포(榮山浦)가 우리 영산도(永山島)와 인연이 깊습니다. 옛날부터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포로 이주해 살았어요. 영산도 홍어 배가 많이 들어간 덕분에 영산포에도 홍어 거리가 조성된 거죠. 우리 섬에서 잡은 홍어를 돛단배에 싣고 열흘 남짓 달리면 영산포에 도착하는데 그 열흘 동안 홍어가 자연 발효돼 삭힌 홍어가 된 겁니다. 보세요.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날것으로만 먹잖아요.”



흑산도 명소 ‘코끼리바위’도 사실 영산도에 있다. 흑산도 관광 책자에 표지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코끼리바위는, 사실 영산도에서 ‘석주대문(石柱大門)’이라고 부르는 영산 8경 가운데 하나다. 영산도 석주대문은 30t급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코끼리바위다. 인근 홍도나 울릉도·독도에도 코끼리바위가 있지만 크기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바위 구멍에서 코고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난다는 비성석굴(鼻聲石窟), 폭포 물을 세 번 맞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전설이 있는 비류폭포, 부처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부처 바위도 영산도의 볼거리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하루 종일 햇볕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댄볕산’은 머리를 헤쳐 풀고 누운 만삭의 여인네 모습이다. 바람과 파도가 만든 기이한 바위와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등은 홍도를 닮았다고 한다. 영산도를 ‘작은 홍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3 영산도 주민들이 바다에서 캐온 홍합을 손질하고 있다.
4 거북이의 손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거북손. 영산도의 맛있는 먹거리 중 하나이다.


파도 소리 벗삼아 쉬어 가는 힐링 아일랜드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2010년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국립공원 안에 있어 개발이 어려운 농어촌 마을을 생태관광 명소로 만드는 사업이다. 관광을 활용해 주민 소득을 늘려 궁극적으로는 주민이 ‘떠나는 마을’에서 ‘되돌아오는 마을’로 바꾸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 전남 진도군 관매도를 시작으로 2011년에 4곳, 2012년에 4곳 등 지금까지 모두 9개의 명품마을을 조성했다.



5 바위 구멍에서 코고는 것 같은 바람 소리가 난다는 비성석굴.
공단에 따르면 2011년까지 지정된 5개 마을의 경우 소득 437%, 탐방객 11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명품마을 1호 관매도의 성과는 눈부시다. 명품마을로 조성되기 전에는 한 해 평균 탐방객이 4553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만1439명이 찾았다. 명품마을로 지정되기 전 연평균 수익은 1억7800만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7억7000만원에 이르렀다. 탐방객은 9배, 수익은 약 10배가 증가했다. 지난해까지 관매도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쓴 돈은 약 11억원. 한 해 수익이 사업비용 모두를 훌쩍 넘겨 버렸다.



관매도 명품마을 박길석(44) 사무장은 “소득도 늘었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마을 인구가 늘어난 것”이라며 “타지에 살던 원주민 8가구 10명이 되돌아 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다 보니 자발적으로 명품마을이 되겠다고 신청하는 마을도 생겨났다. 영산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산도가 고향인 영산도리 최성광 이장이 명품마을을 신청한 이유는 분명했다.



“영산도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98가구 480여 명이 살았어요. 초등학생만 100명이 다 됐지만 지금은 우리 아들 하나밖에 없어요. 최근 3년 사이에 10가구가 또 섬을 떠났어요. 이러다가는 무인도가 될 것 같아 명품마을 신청을 했습니다.”



영산도는 지난해 4월 명품마을로 지정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예산 10억원을 받아 지난해 말까지 길을 닦고 헌 집을 고치고 담벼락을 세우는 등 마을 정비 사업에 썼다. 이어 관광 인프라도 하나씩 갖췄다. 섬 아낙네가 산나물을 뜯으러 가던 길을 3㎞ 길이의 탐방로로 조성한 뒤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골목길 1㎞를 더해 ‘영산 10리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맑은 날에는 탐방로 전망대에서 흑산도가 보인다. 숙소와 식당이 없는 단점도 보완해서 펜션 세 동과 주민이 공동 운영하는 식당도 만들었다.



효과는 올 초부터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까지 영산도를 다녀간 사람이 420명쯤 된다. 지난 한 해 전체 탐방객 수와 비슷하다. 올 연말까지 2000명이 찾아와 마을 공동 소득이 1억원까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산도는 올해부터 홀로 서기에 나섰다. 흑산도의 부속 섬 중 하나가 아니라 영산도라는 자체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영산도는 이제 조용한 어촌에서 파도 소리 벗 삼아 며칠 쉬었다 가는 힐링 아일랜드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여행정보=영산도까지 곧바로 가는 배는 없다.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흑산도까지 가는 쾌속선을 이용한 뒤 갈아타야 한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약 2시간. 오전 7시50분, 8시10분, 오후 1시와 4시 등 하루 네 차례 배가 있다. 요금 3만4300원. 남해고속 061-244-9915, 동양고속훼리 061-243-2111. 흑산도에서 영산도로 가는 배는 최성광 이장(010-7330-7335)에게 연락하면 시간에 맞춰 흑산도로 나온다. 10분쯤 걸리며 왕복 1인 1만원. 영산도 비경을 보기 위해서는 유람선을 이용하는 게 좋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1인 1만 5000원. 숙박시설은 26㎡(약 8평·5만5000원) 두 채와 50㎡(약 15평·11만원) 한 채 등 모두 세 개가 있다. 유람선·배편·숙박 등 영산도 관광에 관한 모든 사항은 최 이장에게 물어보면 된다. 홈페이지(yeongsando.co.kr)에서도 예약 가능하다. 영산도 명품마을 사무국 061-261-1003.





글=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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