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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개성공단 문 닫고 6·15행사 같이하자는 북

중앙일보 2013.05.24 00:32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서울 충정로 한 빌딩 사무실에 22일 북한이 보낸 팩스 한 장이 도착했다. ‘6·15 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가 이곳에 입주한 남측위원회에 중국 거점을 통해 전송한 것이다. 23일 공개된 이 편지의 핵심은 “6·15를 기념하는 민족 공동의 통일 행사를 갖자”는 것이다. 북한은 개성 또는 금강산을 장소로 제시했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일방적 근로자 철수로 가동 중단 50일을 맞고 있다. 123개 입주 기업들이 두고 온 완제품과 원부자재(업계 추산 5000억원)의 반출을 위해 정부가 당국대화를 제안했지만 거부했다. 공단 문은 걸어 잠근 채 인접 지역에서 남북이 같이 행사를 하자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7월 북한 경비병에 의한 남한 관광객 피격 사망으로 5년간 중단 상태다. 비무장 민간인이 조준사격으로 숨졌는데도 백배사죄하기는커녕 ‘군사시설 접근’ 운운하는 적반하장식 사태 수습으로 파국을 초래했다. 이런 곳을 행사장으로 꼽은 뒤 “긍정적인 회답을 기대한다”고 한 북한 편지의 마지막 줄은 생뚱맞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 없다.



 6·15 공동선언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첫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은 화해 협력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상당수 국민들은 ‘역사적인’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때와 장소는 물론 분위기를 가려 판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공세는 김정은 체제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최전방 군인들에게 “적들을 모조리 벌초해버리라”고 말하는 걸 우리 국민들은 똑똑히 지켜봤다. “씨도 없이 잿가루로 만들겠다”(3월 26일 최고사령부), “살아남아 후회할 놈도 없게 하겠다”(4월 11일 조평통)고 호언한 걸 기억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제의한 북측위원회 핵심 인물들이 그런 대남 협박 논리를 짜고 실행한 대남요원들이란 걸 국민들은 눈치채고 있다.



 불과 한두 달 전 입에 담기 힘든 폭언으로 동족을 위협했던 북한이 ‘6·15 공동행사’를 제안하고 나선 데는 정부와 입주 업체들의 사이를 갈라 이간질하려는 꼼수가 숨어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참에 노동당의 대남 전략가들이 6·15공동선언을 다시 꼼꼼히 읽길 권한다. 핵무기로 동족을 겁박하고, 상대 지도자를 ‘치맛바람’ 운운하며 능멸하는 게 6·15의 정신인지 묻고 싶다.



 이제라도 북한이 진솔한 해명과 태도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남북 상생의 개성공단이 다시 신나게 돌아가고, 금강산을 안심하고 다시 찾을 수 있을 때 6·15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영 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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