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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13명 중 11명 찬성 부부 사이 강간죄 첫 인정

중앙일보 2013.05.17 00:42 종합 1면 지면보기
정상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왔다. 파탄 난 부부 사이에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2009년 있었으나 정상적 부부에 대해선 첫 대법원 판결이다. 이는 1970년의 기존 대법원 판례를 43년 만에 변경한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위반(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46)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3년6월에 정보공개 7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와 B씨(42)는 2001년 결혼해 자녀 두 명을 둔 부부다. 부부싸움이 잦아졌던 2011년 10월 A씨는 부엌칼로 B씨를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에도 흉기를 사용한 강제적 성관계는 두 차례 더 있었다. 참다못한 B씨 친정 식구들이 A씨를 신고해 A씨는 그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재판 때 핵심 쟁점은 ‘법률상 아내를 범한 경우라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였다. 형법 297조에 따르면 강간범죄는 ‘폭력·협박을 동원해 부녀(婦女)를 간음했을 때’ 성립한다. 종래 대법원은 실질적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간에서 법률상 아내는 부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부 사이에 은밀히 이뤄지는 성관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자제해 가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존 입장을 바꿨다. 재판부는 “부녀란 기혼이든 미혼이든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법률상 아내도 강간죄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민법상 부부간에는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할 수는 없다”며 “(결혼이)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참아야 할 의무까지 부여하는 것은 아니며 폭력과 협박을 통해 성관계를 가졌다면 부부간이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과 법 감정의 변화가 판례 변경의 주요 근거가 됐다는 것이다. 다만 13명의 대법관 중 이상훈·김용덕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강간죄를 부부 관계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 이뤄지게 될 우려가 있 다”며 “굳이 판례를 변경하지 않아도 남편의 폭행·협박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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