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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최고의 의사, 죽을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린다

중앙일보 2013.05.14 00:48 종합 20면 지면보기
어쩌면 개인의 불행으로 끝났을 공황장애는 캔버스를, 전시장을 덮는 물방울 무늬로 나타나 현대미술의 성취가 됐다. 원로가 아닌 현역 화가, 구사마 야요이(84)는 도쿄 신주쿠의 물감 냄새 나는 작업실에서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쿄=권근영 기자]


현대미술의 여왕이 된 광기의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84)다. 마흔여덟 때부터 지금까지 36년째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다. 낮에는 길 건너 작업실서 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걸 꺼리고, 걸음이 불편해 여행도 어렵다. 그런 그를 찾아갔다. 정신병자·동양인·여성-. 소위 편견 3종 세트와 싸워온 그의 ‘투쟁기’를 듣고 싶었다.

‘일본 최고의 작가’ 구사마 야요이
공황장애로 평생 투병하며 작업



 지난달 22일 오후 2시 도쿄 신주쿠구 주택가 사이의 3층 건물. ‘구사마 스튜디오’라는 작은 문패가 보였다. 작업실 입구엔 가로 세로 2m는 족히 넘는 작품이 차곡차곡 세워져 있었다.



정신병·동양인·여성 편견 이겨내



구사마의 작업실 개수대에 놓인 붓들.
 프랑스의 미술시장 정보회사 아트 프라이스는 지난해 구사마를 생존 일본 미술가 중 최강자로 꼽았다.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파리의 퐁피두 센터, 런던의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서 순회전을 열고,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하는 등 2012년은 구사마의 해”라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 중 지난해 가장 비싸게 거래된 것은 2월 도쿄 경매에서 팔린 회화 ‘무한한 그물’(2006)이다. 136만7300달러(약 14억9000만원)를 기록했다. 두 번째는 3월 서울의 K옥션에서 거래된 ‘호박’(1990)으로 106만8000달러(약 11억8800만원)였다.



 윗층으로 올라가자 구사마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밑그림도 없었다. “작품을 할 때 일단 붓을 잡고 그려나간다”는 그다. 앞치마 두른 조수 둘이 돕고 있었지만 붓을 놀리는 이는 오직 구사마뿐이었다. 완성된 대형 캔버스가 벽면마다 세워져 있었고, 선반엔 물감상자가 쌓여 있었으며, 한 구석의 개수대엔 세척한 가는 붓들이 꽂혀 있었다.



빨간 가발 쓴 여든넷의 현역 작가



구사마가 타고 다니는 물방울 무늬 휠체어.
 빨간 단발머리 가발을 쓴 할머니는 낯선 이의 방문에 물감과 붓을 치우게 하고,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다 만 캔버스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강 파랑 물방울 무늬가 가장자리부터 점점이 찍혀 있었다. “나의 물방울은 사랑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말해온 그다.



 - 구사마 야요이에게 사랑이란.



 “모든 것이다.”



 - 84세 현역으로 일본에서는 물론 세계적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나 자신, 가정, 질병 등 문제를 뛰어넘고 나만의 예술을 확립하려고 했다. ‘지금부터’라는 생각이다. 더 큰 것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구사마는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종묘(種苗)회사 대표인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구사마는 열 살 무렵 빨간 꽃무늬 식탁보의 잔상이 온 집안에 보이는 등 착란증상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이런 딸을 ‘훈육이 부족한 탓’이라며 매질했다.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했고, 1957년 28세 나이로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뉴욕에서 바디 페인팅, 반전 시위 등 강도 높은 행위예술을 벌였고, 거울이나 폴카도트(물방울 무늬)가 무한 반복을 이루는 설치 등을 제작했다.



 66년엔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 앞을 무단 점거하고 100개의 은색 공을 개당 2달러에 파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러나 작품을 팔아 먹고 살 처지는 못 됐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친 채 73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파란만장한 그의 이력을 보면 ‘인생은 60부터’가 아닌가 싶다. 드디어 예순(1989년)에 뉴욕 현대미술관, 영국 옥스포드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게 예순넷 때였다. 무단점거 퍼포먼스로 주최 측의 제지를 받은 지 27년 만의 일이다.



 - 요즘 가장 어려운 점은.



 “공황장애로 30년 넘게 고생했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예술은 내게 최고의 의사다. 나는 그리는 게 너무 좋아 잠잘 때도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릴 거다. 여러분이 내 작품을 감상하고,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나의 미술은 사랑, 무한의 우주에 대한 메시지 같은 것이다.”



 구사마에겐 양자가 있다. 스튜디오 디렉터로로 25년째 함께해온 다카쿠라 이사오(高倉功·50)다. 그가 전한 구사마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9시 제가 출근해 병원서 모셔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점심식사도 20분 내에 해치우고 스튜디오 2층에 구부려 앉아 오후 6시까지 꼬박 그린다. 주말엔 스튜디오가 쉬기 때문에 구사마도 쉴 수밖에. 그러나 실은 병원의 작은 방에서 계속 그리고 있다.” 친구라고 해봐야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73) 정도란다.



 - 후대에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은가.



 “예술을 하며 크나큰 우주를 경험하다 보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구나’ 싶다. 죽을 때까지 예술을 계속할 것이며, 사후 수 백 년이 지나도 유효할 메시지를 남기겠다. 이를 위해 혼신을 다하고 싶다.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 전세계 여러 사람들이 전쟁이나 테러 공포 없이 자신들의 사랑, 생생한 인생을 이어가길 바란다. 나의 예술이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답은 이것이다.”



병원 옆 작업실 … 훨체어 타고 오가



 오후 6시. 화가는 낮부터 씨름하던 캔버스를 거의 다 채우고 휠체어에 앉아 병원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소녀처럼 “봐, 내가 다 그렸지”라며 의기양양했다. 물감통과 붓더미를 카메라에 담는 기자에게 “나와 내 작품만 찍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또 하루를 보냈다. 갓 데뷔한 신인인 양 “혼신을 다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노장의 분투, 그 자체가 그림이자 예술이었다.



도쿄=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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