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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머니, 에구머니

중앙일보 2013.05.14 00:38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난 11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황당한 해프닝이 발생했다. 부산 공격수 임상협(25)이 포항과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정강이 보호대에서 ‘윤성효 부적’을 꺼내 이마에 붙이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윤성효 부적’은 수원 감독 시절 서울전 불패 신화를 쓴 윤성효(50) 감독의 얼굴이 그려진 부적으로, 부산 팬들 사이에서는 요즘 필승 카드로 통한다. 하지만 팬들의 환호성은 이내 허탈한 탄식으로 바뀌었다. 최명용(37) 주심이 가차없이 임상협에게 옐로 카드를 준 것이다.(사진①)


머리에 상의 쓰고, 부적 붙이고…
별 생각 없이 했다가 경고받고 허탈
FIFA, 독일 월드컵 이후 규정 강화
골 축하쇼 잘못했다가는 망신살

 경기 후 임상협은 “경고를 받을 줄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한 언론사는 “주심이 임상협의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였다”고 꼬집었다. 축구팬들도 주심이 융통성 없는 판정을 내린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축구 선수들도, 팬들도, 언론도 헷갈리는 골 세리머니.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되는 걸까.



 임상협에게 경고를 준 건 규정을 준수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경기규칙 제12조에는 ‘선수가 복면 또는 이와 유사한 물품으로 자신의 머리 또는 얼굴을 덮는다면 경고를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같은 이유로 성남에서 뛰던 파브리시오(33·브라질)는 2010년 2월 강원전에서 스파이더맨 가면을 머리에 썼다가 경고를 받았고(사진②), 대구에서 뛰던 레오(26·브라질)도 그해 4월 서울전에서 태극기로 머리를 덮는 세리머니를 펼쳤다가 옐로 카드를 받았다.



 전북 이승기(25)는 지난 5일 서울전에서 유니폼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가(사진③), 스테보(31·수원)는 포항에서 뛰던 2009년 3월 수원전에서 상대 서포터스석을 향해 활 쏘는 시늉을 했다가(사진④), 라돈치치(30·수원)는 성남 시절인 2010년 3월 관중석 담에 올라가 남동생과 포옹했다가 옐로 카드를 받았다.



 골 세리머니 경고 규정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강조됐고, K리그에서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프로축구연맹은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인지를 시키지만 선수들은 아직 이해가 부족하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골 세리머니에 너무 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신명준(40) 프로축구연맹 차장은 “축구경기 규칙은 만국 공용 규정이다. 어느 나라든지 어떤 리그든지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FIFA는 세리머니가 정치·종교·인종차별 등의 메시지와 연결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며 “만약 임상협이 월드컵에서 같은 세리머니를 펼쳤다가 경고 누적으로 다음 경기에 못 뛰면 누구 책임인가. 프로 선수들을 보고 꿈을 키우는 축구 꿈나무들이 배울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골 세리머니는 득점의 기쁨을 팬과 함께하는 소통의 방식이다. 신명 나고 기발하면서도 FIFA 규정에 걸리지 않는 세리머니를 개발하기 위해 선수들이 골머리를 좀 앓게 생겼다.



김지한·박소영 기자



◆FIFA 경기규칙 제12조 내용



득점이 되었을 때 선수가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지만, 축하는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중략) 만일:



▶ 주심의 견해로, 선수가 선동적인, 조롱하는 또는 혐오스러운 동작(제스처)을 한다면



▶ 선수가 득점을 축하하기 위해 주변의 담장에 올라간다면



▶ 선수가 자신의 상의를 벗거나 또는 상의로 머리를 덮는다면



▶ 선수가 복면 또는 이와 유사한 물품으로 자신의 머리 또는 얼굴을 덮는다면 선수는 경고를 받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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