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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들만 집 사주나 … 내 상속분 달라" 딸들의 반란

중앙일보 2013.05.14 00:07 종합 12면 지면보기

36년 전 민법이 개정되면서 새 상속제도가 하나 생겼다. 하지만 이용률은 저조했다. 유언을 통해 더 예쁜 자식에게 재산을 더 주는 걸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변화는 여권 신장의 속도에 비례해 나타났다. 부모가 남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자식들이 벌이는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이 10년 새 10배 늘었다. 원고 중 절반이 딸이라서 ‘딸들의 반란’으로 불린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박모(45)씨는 지난해 두 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3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데 이어 그해 6월 법원 서류 한 장이 집으로 날아오면서 막내 여동생(40)과 사실상 절연 상태가 되면서다. 아버지가 숨진 뒤 3개월 만에 송달된 건 서울중앙지법 소인이 찍힌 민사소장이었다. 원고는 여동생, 피고는 어머니와 박씨를 포함한 3명의 오빠였다. 소장에서 여동생은 “아버지가 생전에 오빠들에게만 집 사라고 돈 주고 땅도 나눠주고 내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 중 내 유류분(遺留分) 1억여원을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이슈추적] 유산 소송 10년 새 10배 … 원고 절반이 딸



 가족들이 설득했지만 여동생은 완강했다. 1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지난 3월 법원은 “동생에게 4000만원을 주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이번엔 오빠들이 화가 났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조정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부에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피고 측 관계자는 “조정 과정에서 여동생이 어머니가 자신을 학대했고 오빠들이 공모해서 아버지를 죽였다고까지 주장해 가족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틀어졌다”며 “오빠들 입장에선 아버지도 잃고 동생까지 잃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박씨 가족의 경우처럼 부모가 숨진 후 형제·자매 등 공동상속인이 “재산 상속이 불공평했다”며 서로를 상대로 내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왼손에는 법전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엄정한 정의 실현을 상징한다. [김성룡 기자]▷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69건에 불과했던 유류분 소송은 지난해 588건으로 10년 새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원인으로는 딸들의 권리의식 향상이 첫손에 꼽힌다. 실제로 유류분 소송의 원고는 딸이 아들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본지가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서울 소재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67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원고의 절반을 웃도는 51.6%가 딸인 데 반해 아들은 25.2%에 그쳤다. 피상속인(상속 재산의 원소유주)의 아내는 3.8%, 나머지 19.5%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및 사망한 상속인의 유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을 당하는 피고는 아들이 49.6%로 가장 많았다. 딸은 18.8%에 불과했다. 전체 사건 중 피고에 장남이 포함된 건 61.2%. 장남이 원고에 포함된 사건은 4.5%에 불과했다.



2005년 "여성도 종중" 판례 이후 늘어



2005년 대법원이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20세 이상 성인 여성에게도 허용하는 새 판례를 내놓은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다. 이전까지는 성인 남자로 제한돼 있었다. 실제로 그 판결 이전에는 한 해 20~30건씩 늘어나던 유류분 청구 소송이 판결 이듬해부터 50~80건씩 늘어났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임채웅 변호사는 “부모세대가 딸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관념에 따라 아들 위주로 재산을 나눠줘 온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남녀가 평등하다고 교육 받은 딸들이 승복하지 못해 소송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상황의 악화, 가족공동체의 해체도 원인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조모(61)씨는 2011년 “1999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형이 재산을 더 많이 받았다”며 형(77)을 상대로 자신의 유류분 146만여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9단독 김진영 판사는 지난해 2월 “상속 개시 후 10년이 지나 시효가 소멸했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2002년 한 건당 1억7458만여원이었던 유류분 소송물가액은 2007년 2억6255만여원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엔 1억2861만여원으로 줄었다. 서울고법 가사전담부의 서승렬 판사는 “예전에는 돈보다는 친족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더 두려워했지만 요즘엔 가족 상대 소송을 주저하지 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40년 전 아들에게 준 땅도 소송 대상



 유류분 소송은 부모의 불공평한 생전증여가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권모(67)씨는 지난해 1월 유류분 청구 소송에서 져 여동생에게 5억4000만원을 줘야 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 배호근)는 권씨가 1973~79년 아버지로부터 받은 경기도 고양시 등의 부동산 6182㎡, 60억여원어치를 모두 생전에 증여받은 특별수익으로 보고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으로 분류했다. 권씨는 자신이 직접 취득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당시 권씨가 아버지 소유 부동산 관리 일만 했을 뿐 별다른 직장생활을 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생전증여는 ‘특별수익’으로 불린다. 부모가 특별하게 물려준 재산이라는 의미다. 이게 문제되는 건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원래 민법에는 상속 개시 1년 이내에 증여한 경우에만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산입한다고 규정돼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 1년 이상의 기간에 준 재산은 유류분 청구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대법원은 1996년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을 받아 특별수익을 얻은 자가 있는 경우는 이 조항을 배제한다”고 판시했다. 즉 아들·딸, 혼외 자식 등 공동상속인 중 일부에게만 부모가 재산을 생전에 나눠줬다면 기간에 상관없이 유류분 청구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가사소송 전문가인 이상원 변호사는 “결혼할 때 준 전세자금, 유학비용 등 부모가 생전에 일부 자식에게만 준 재산은 모두 특별수익으로 소송 대상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67건의 판결 중에서 최대 규모의 분쟁 사건은 소송 가액 399억원짜리였다. 자산 규모가 1조원이 넘는 염전개발업체인 S사 창업자의 두 딸이 2011년 6월 막내 동생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들은 “막내 동생이 물려받은 주식가치가 400억원에 가까운데 본인들은 20억원만 물려받았다”고 주장했으나 민사35부(부장 한영환)는 지난 3월 “사전에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각했다. 그러자 두 딸은 소송가액을 779억원으로 높여 항소한 상태다.



소송 간단해 보이지만 승소 쉽지 않아



 유류분 소송은 법리적으로는 간단해 보이나 실제 승소까지는 쉽지 않다. 67건의 판결 가운데 원고가 이긴 경우(일부 승소 포함)는 67.2%였다. 이는 지난해 전국 법원의 민사사건 승소율 86.7%를 밑돈다.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 간에 누가 뭘 물려받았다는 건 알아도 증빙서류를 챙겨놓기는 쉽지 않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 재산이 섞이게 돼 생전증여인지, 자신이 번 돈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송 기간만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2009년 3월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공모(57·여)씨가 오빠 4명을 상대로 제기한 유류분 반환소송은 재판부가 세 번 바뀐 끝에 3년6개월 만에 1심 선고가 났다. 일반 민사사건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136.7일이다. 증여 받은 경기도 포천의 땅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이게 증여재산인지를 놓고 법정 공방이 치열해지면서다. 아직도 항소심이 서울고법에서 진행 중이다. 임채웅 변호사는 “알고 있는 것과 입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유류분 소송은 결코 쉬운 재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감정싸움 극에 달해 대부분 가족 파탄



 부작용도 심각하다. 소송의 끝은 대부분 가족관계 파탄이다. 권리 찾기 소송임에는 분명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감정싸움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유류분 소송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 지적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자녀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자신이 죽은 후 자녀들 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막기 위해서는 유류분을 감안해 재산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 상속전담팀 최명호 변호사는 “유류분 관련 분쟁의 99%는 돌아가신 분 책임”이라며 “자신의 현재 재산과 과거 자녀들에게 증여한 재산 등을 감안해 정교한 상속 플랜을 짜야 자녀들 간 돈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박민제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유류분 (遺留分)



[민법 제1112조~1117조]



일정 범위의 법정 상속인(근친자)에게 받을 권리가 보장된 상속재산.



자신의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 유류분으로 인정된다. 이보다 적게 받은 경우 상속인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할 수 있다.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 또는 유언 증여를 받지 못한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영국·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채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선 1977년 민법 개정 때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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