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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온 원로의 친필 편지…한·중 인문유대의 본보기

중앙일보 2013.05.13 15:41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향후 5년간 대중 외교의 주요 기조는 ‘인문유대’다. 한자문화권의 동질성을 기반 삼아 컨센서스를 이뤄가겠다는 의도다. 이와 관련해 훈훈한 이야기 한토막을 소개한다. 지난달 말 쑹젠(宋健·82) 중국과학원 원사가 임계순 현 오산학원 이사장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 쑹젠 원사는 200여 명에 불과한 중국공산당의 실세그룹인 중앙위원을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역임한 중국과학기술계의 원로다. 우리에겐 1990년대 초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메신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 사회학자 조리제 박사를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다리를 놓았다. 한·중 수교의 산파 중 한 분이다.



쑹젠 원사는 4월 19일 ‘중국과학보(中國科學報)’ 14면에 실린 ‘한국 학자의 손으로 쓴 청사(淸史)’란 기사를 읽었다. 2003년 중국어로 번역된 임계순 이사장의 역작 『청사』를 상찬한 글이었다. 쑹젠 원사와 임 이사장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이사장은 쑹젠 원사를 1991년 교육부 지원으로 베이징 대학에 1년간 머물던 시절 처음 만났다. 쑹 원사는 임 이사장의 『청사』가 중국 유력 언론에 소개된 소식을 전했다.







게다가, 최근 번역 출판된 『만주족의 역사-변방의 민족에서 청 제국의 건설자가 되다』(돌베개, 2013)의 저자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Pamela Kyle Crossley)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특별히 임계순 이사장을 언급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서 등장한, 청조와 팔기제도의 연구 전문가들은 임계순 교수의 작업에 큰 신세를 졌다”며 학은(學恩)을 감사했다.



임계순 교수는 “『청사』가 중국에서 다시 주목 받는다는 소식은 중국 학계에 동북공정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일률적인 역사해석에 반발하는 학자들이 한국학자의 참신한 역사해석에 공감해 10년 전 저서를 다시 언급한 것”이라며 “중국인이 공감할 국내의 연구성과를 중국어로 소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동북공정 대응법”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한국 관심은 임 이사장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현대 중국정치 개설서인 『용과 춤을 추자』가 중문 번역을 마치고 편집 작업 중이라는 소식이다. 한·중 인문유대는 외교적 레토릭보다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연구자의 업적이 쌓일 때 탄탄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어 ‘중국과학보(中國科學報)’에 실린 ‘한국 학자의 손으로 쓴 청사(淸史)’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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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항상 중국사학자가 저술한 중국통사 혹은 단대사를 통해 피비린내 나는 왕조 교체, 선조들의 빛나는 업적을 습득한다. 허나 저자가 바뀌어도 내용은 엇비슷하다. 역사의 맥락이 판에 박은 듯 의심조차 없다. 시간이 갈수록 착각은 쉬워진다. 최근 홍콩사회과학출판사가 2003년 10월 출판한 『청사(淸史)』를 구득했다. 저자는 한국 한양대학 임계순 교수, 역자는 천원서우(陳文壽), 600여 페이지의 책이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은 중국학자의 논저를 인용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 역사학자의 관점과 사료 선택은 자못 독특하다. 독자는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과거 중국학자들이 쓴 통사 혹 단대사는 어떤 왕조건 영토의 범위가 정치하지 않다. 아예 관련 데이터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많다. 하지만 임계순의 『청사』는 명백하게 지적한다. “18세기말 청의 영토는 대체로 18개 성 약 354만8300㎢와 약 1004만1430㎢의 변강으로 구성됐다. 총면적은 1358만9730㎢다.” 또 “변강지구는 동북은 현재의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헤이룽장(黑龍江)성, 러시아 헤이룽장 일부, 외흥안령 이남, 우수리강 동부에서 사할린 지역까지, 서북은 중앙아시아의 톈산(天山)남북로 주변과 칭하이(靑海)성, 서남은 시짱(西藏),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성의 광활한 지역 및 연해와 도서를 포괄한다”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청대 전성기의 국토 수치가 깊은 인상을 줬다. 게다가 제국주의 열강의 우리 영토 병탄과 뻔뻔한 정객의 매국행위를 떠올리게 된다.



책이 소개하는 청대 정예 군사역량인 팔기군의 형성, 정권 탈취, 청왕조 건립 과정에서의 작용과 흥쇠는 생각거리를 많이 던진다. 청군이 입관해 명조의 강산을 도모하려는 순간 만주 팔기군은 9만6000명에 못 미쳤다. 여기에 몽고 팔기 3만8300인, 한인 팔기 5만1300명까지 모두 18만6600명에 불과했다. “이 정도의 적은 병력으로 중원에 진입해 중국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반청군대를 진압한 것은 하늘이 결정한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감개는 이런 말로 충분하지 못하다.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깊은 분석과 여기서 추출한 역사의 교훈이다. 단지 팔기 군대 때문이 아니었다. 이후의 평화 시기는 오래지 않아 기강이 이완됐고 감당할 수 없는 ‘무용지물’인 부패가 넘쳤다. 책 속 ‘팔기군의 쇠퇴’에 이를 간단명료하게 소개한다. 지금에 이르러 ‘팔기 자제’는 사치스럽고 호사하는 부패계층, 불효자손의 대명사가 됐다.



경제 측면을 중시해 역사적 사건의 뿌리 깊은 배경을 분석했고, 얄팍한 정치 개념, 정서적인 판단에 머무르지 않은 것은 임계순저 『청사』의 분명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의화단 운동에 대해 현재 적지 않은 유명 역사가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중국의 배외정서를 질책한다. 서방문명을 배척하는 운동이라고 비난한다.



이점에서 임계순의 『청사』는 비교적 객관적인 분석을 내놨다. 의화단 운동이 중국 북부에서 세를 떨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중요한 경제적 원인은 “청조가 관세 자주권을 상실해 열강의 값싼 공업품의 수입을 막을 수 없었다. 원래 소농과 빈농은 잉여노동력으로 면포 등 수공업 제품을 생산해 생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대량의 값싼 면방직품이 쏟아져 들어오자 전통 수공업자들이 경쟁하지 못하고 생계 수단을 상실했다.” 또 독일이 산둥(山東)성 철로부설권을 획득해 토지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멋대로 철도부지의 묘지를 파헤치고, 마을을 철거했다.



이들 행위는 중국인을 극도로 자극했다. 철도 부설로 남북 대운하의 하운(河運)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와 생계를 잃자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졌다. 여기에 “선교사는 치외법권 아래서 무소불위였고, 기독교에 귀의한 자들 대부분은 양민이 아니라 지방에 위해를 끼치는 무뢰배들이었다”(491p)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의화단운동을 직간접으로 불러온 요인들이었다.



요약하면, 낙후한 중국 농업경제에 강제로 이식된 서구 산업혁명의 성과는 중국의 인민들에게 문명의 진보가 아니라 두려운 재난이었다. 생존의 위기와 신앙의 위기를 포함했다. 부패한 청 정부는 그들의 아들인 백성을 보호할 수 없었다. 백성들의 선택은 필연코 맹목적인 피와 불의 세례일 수 밖에 없었다. 역사를 읽을 때는 반드시 ‘여러 곳을 비교해야 한다(貨比三家)’는 말이 맞다. 한 쪽 말만 들으면 잘못된 오류에 빠지기 쉽단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차장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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