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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임대희] 중국 외교부 대변인 華春瑩

중앙일보 2013.05.13 09:42
최근에 대변인에 관한 뉴스가 신문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변인은 해당하는 부서의 추구하는 방향을 일반인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외교부의 대변인은 더 나아가서 국제문제에 관한 해당국의 정책 방향을 발표해주는 역할을 한다. 얼마 전에 조선일보의 최유식 특파원이 홍레이(洪磊) 대변인에 관한 언급을 하였다. 그의 표현대로 중국 외교부의 대변인은 자주 “호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의 대변인이었던 쟝위(姜瑜)씨에 대해서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그녀가 “참으로 말을 얄밉게 한다”는 비판을 자주 내뱉기도 했다. 쟝위씨는 한국에 들렀을 때에도 신문과의 인터뷰는 있었지만, 그다지 공식적인 행사등으로 따뜻하게 맞이해 준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이러한 중국 외교부의 대변인에 관한 이미지와 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이 최근에 이 역할을 맡고 있어 필자로서는 반갑게 생각한다. 남경에 1년간 거주했던 적이 있었던 연유로, 지인(知人)들이 그녀에 관해서 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 덕에 중국의 매스콤에서 보도한 내용을 모아놓았던 것을 바탕으로 화춘잉 대변인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화춘잉(1970년생)씨는 소북(蘇北) 지역의 회안(淮安) 출신이며, 남경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회안(淮安)은 주은래(周恩來)총리의 고향이다. 기아(起亞)자동차 공장이 있는 염성(鹽城)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그녀는 20년간 외교부에서 근무했는데, 외교부 본부에 있을 때에도 주로 서유럽 담당부서에 근무했으며, 해외근무는 싱가포르에 4년 근무했으며, EU본부가 있는 브뤼셀(Brussels)의 중국대사관에 8년 동안 근무하였다. 2012년에 공보국(新聞局)의 부국장을 맡았으며, 2012년말에 대변인이 되었다. 이제는 주로 신문기자들을 통해서 외교부의 현안에 대한 입장을 국내외에 설명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외교부 대변인은 해당국의 형상을 나타내 주면서, 해당국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너무 매체에 영합해서도 안 되면서도 국내외 누구든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므로, 그 업무가 쉽지 않다. 중국내의 조직의 분위기가 외국에서 볼 때에는 강경한 일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외교부 대변인들이 국외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은 원인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각기 그 당사자들보다는 그 조직의 분위기를 반영하다보니 목소리가 높여진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같은 이야기라도 오랜 전통을 가진 중국의 높은 문화 수준을 반영하며 은근한 접근도 가능할 것인데, 이제까지는 그러한 교양을 가진 인재가 이렇게 대변인을 맡을 수 있기까지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 속에서 혼자 고고(孤高)한 모습으로 높은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一雁高空)처럼 견디더라도 중요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랫자리에서 나이가 들어서 자리를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령 같은 지역 출신인 장즈쥔(張志軍)씨와 같은 분이 약간 힘을 보태준다면, 그 재완이 빛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로서는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이 이전의 대변인들과는 달리, 비록 비난해야 하는 상대국이라도 배려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상당히 은유적인 표현으로 비난하는 점에서 교양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강하게 비난해야할 때에는 목소리는 높이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펴는(仰首伸眉) 방법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강남(江南)여인의 우아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감복하는 점이 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화춘잉(華春瑩) 대변인과 같은 재원(才媛)이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중국에서도 역시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예전 같으면 조직의 분위기가 최우선이었겠지만,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성장하여 왔기 때문에, 이제는 조직 내부의 분위기도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자리를 맡는 사람들이 화춘잉(華春瑩) 대변인과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지성있는 대변인 발표를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대변인 직책은 매우 고위직이다. 예전에 이 자리를 4년간 맡았던 류우젠차오(劉建超)씨는 그 뒤에 바로 駐필리핀 중국대사로 4년간 근무했었다.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이 이 직책을 끝내면 주한 중국대사로 와도 좋지 않을까 기대된다. 아마도 첫 번째 여성 대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쪽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이러한 기대를 표시해도 중국이기에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은연중에 칭찬도 해주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도우는 정도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외교부 고위직에는 과장급에서는 여성 외교관이 많이 배출되어 있는데, 곧 국장에 올라가는 여성 외교관이 배출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점에서는 중국이 한발 앞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한국에 근무했던 중국대사들에 대해서 약간 평판이 나빴었다. 리빈(李濱)대사나 닝푸쿠이(寧賦魁)대사들은 주로 북한에 유학했던 점을 바탕으로 한국에 부임한 것이었다. 청잉화(程永華)대사는 일본대사로 가기위한 디딤돌로 한국대사 직을 이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지나치게 고압적(高壓的)인 면모를 보였으므로 한국에서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령, 중국의 국제항공회사의 항공기가 김해공항 부근에 추락하였을 때에 많은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도 중국측에서는 무관심했으나, 한국에서 재난이 발생되었을 때에 중국대사가 곧 바로 현장에 와서, 재해보상에 대해서 강력하게 언급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서, 한국측에서 즉시 이를 원만하게 처리하도록 조치하였는데, 이점을 두고도 대사가 곧 바로 간여할 사항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외교부가 그동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양성해 놓은 인재들이 많으므로, 앞으로 한국에 대사로 오는 분들은 좀 더 G2라는 위상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생각된다.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의 학창시절에는 친구들이 그녀를 “영춘화(迎春化)”라 불렀다고 한다. 이름을 거꾸로 부르면, “봄꽃을 맞이 한다”는 뜻이 되기에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많은 변론대회를 준비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항상 시합에 나가면 1등상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녀의 부친은 회음현(淮陰縣)의 당(黨)서기(書記)였으며, 모친은 구청(區廳)의 부청장이었다. 따라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넉넉한 가정형편이었지만, 그다지 그러한 티를 별로 내지 않았다고 한다. 대입 수능고사가 가까워 오는데도, 그녀는 반(班)의 학생들과 남녀 축구시합을 조직하였다고 한다. 다른 반 학생들은 모두 복습하기에 바빴는데, 그녀의 반에서는 비록 축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수능고사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녀가 제일 성적이 좋았기에 남경대학을 갔던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부부는 남경대학 캠퍼스 커플로서 지금은 12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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