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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미국, '내부의 적' 조심해야

중앙일보 2013.05.13 00:48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언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지난 4월 15일 발생한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폭탄테러 사건에 미국 당국이 대처한 방식은 많은 우려를 낳게 한다. 3명이 숨지고 264명이 다친 이번 테러의 범인은 단 2명, 차르나예프 형제다. 하지만 형 타메를란은 이미 사망했고 동생 조하르 혼자서 부상을 입은 채 도주하고 있을 당시 보스턴 당국은 시 전체를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대중교통이 멈춰 섰고 열차 운행이 중단됐으며 가게와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 시민들은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권고를 들었다. 테러범을 잡을 때까지 보스턴은 유령도시가 돼버렸다.



 문제는 이것이다. 정신적 안정을 잃은 젊은이 두 사람이 비료와 압력솥으로 이리저리 만들어낸 사제 폭탄이 미국의 주요 도시에 이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것은 다른 과격 집단에 얼마나 매력적 사례로 비칠 것인가.



 이 사건은 지도자들이 공포에 질릴 경우 현대 도시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 당국의 과도한 대응은 마침 상원에서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이 부결된 직후 나온 것이라 더욱 황당하다. 법안은 이미 알려진 살인범이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구입하거나 통상 전시에만 사용되는 무기를 민간인이 입수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이는 마치 미국인들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정신이상자들이 공개 시장에서 구입한 무기로 학생이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은 정기적으로 일어나도 참을 수 있지만 ‘테러리스트’란 딱지가 붙은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는 집단 히스테리를 표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보다 나쁜 것은 공화당 소속 상당수 상원의원의 행태다. 미국 시민인 조하르 차르나예프의 법적 권리를 박탈하고 그를 ‘적의 전투원’으로서 군사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요구한다. 마치 19세의 대학생이 미국과 전쟁에 나선 군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외부의 적에 대한 과장된 공포는 언제나 미국 정치지형의 일부였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은 위험이 없는 피난처로 전통적으로 간주돼 왔다. 외부세계의 악은 자유의 나라를 건드릴 수 없어야 한다. 만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진주만 공격이나 911테러 같은-모든 지옥이 열리게 된다.



 또 다른 요인은 문화와 전통이 각기 다른 수많은 지역 출신으로 구성된 나라에 공통의 적이 필요하다는 점일지 모른다. 미국이 공산주의자나 이슬람주의자에 포위됐다고 하면 많은 미국인은 소속감을 느낀다. 위험한 외부인이나 그들이 국내에 침투시킨 요원을 상대로 국가를 방어하는 것은 그 위험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강력한 결속감을 제공한다.



 그 같은 결속은 유용할 수도 있고 만일 전시라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포의 정치는 미국 자체에 위험이 된다. 알카에다를 비롯한 정치 테러리스트 집단의 목표는 보복을 선동하고 자신들의 명분을 최대한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이들은 통상의 범죄자로서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군인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면 급진적 패배자와 반정부주의자의 공감을 얻고 지원자를 충원할 수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테러리즘을 “미국의 자유에 대한 증오의 표현”이라고 설명한 일이 있다. 하지만 테러리즘이 죄수에 대한 고문과 상시적인 경찰 감시, 미국 시민의 법적 권리에 대한 공식적인 위협을 부른다면, 혹은 젊은 이민자 2명의 범죄가 하나의 도시 전체를 멈춰 서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미국 정부가 어떤 테러리스트가 희망하는 것보다 더욱 크게 자신의 자유에 스스로 해를 끼치게 된다. ⓒProject Syndicate



이언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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