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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진도 안 나왔는데 … '창조경제 테마주' 거품 주의보

중앙일보 2013.05.10 00:08 경제 3면 지면보기
주식시장에 창조경제 바람이 뜨겁다. 창조경제와 관련한 종목들의 주가가 박근혜정부 들어 쑥쑥 오르고 있다. 정부가 ‘창조경제’의 개념 정도를 제시하고 아직 뚜렷한 정책방향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이런 현상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있었다. 김대중정부와 이명박정부가 각각 벤처와 녹색성장을 화두로 제시했을 때도 기대감에 증시가 잔뜩 부풀었었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 잔뜩 올랐던 주가의 거품이 꺼지면서 개인투자자들만 손해를 봐야 했다. 창조경제는 이런 전철을 피해 나갈 수 있을까.


[객원기자 리포트] 시장에서 본 창조경제

음성·동작인식 종목 주가 4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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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증시에선 창조경제 관련으로 분류되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 분야 중소형주 50여 개의 주가가 뛰고 있다. 특히 음성·동작 인식과 관련한 8개 종목은 새 정부 출범 이후 평균 40% 넘게 상승했다. 몇몇 대형주도 창조경제의 덕을 보고 있다. 방송·통신 융합의 중심 기업으로 소문난 SK텔레콤은 코스피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20% 넘게 올랐다. 이런 현상은 석 달 전 시작됐다. 지난 2월 김종훈 미국 벨연구소 사장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됐을 때 이른바 ‘김종훈 관련주’가 상승했다. 방송·통신·콘텐트 관련 기업이 대상이었다. 투자자들이 이런 산업의 융합을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봤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창조경제는 박근혜정부의 경제·산업 정책의 핵심 축이다. 제조업 등 기존 산업과 IT·과학기술의 융합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탈바꿈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정체성은 아직 모호하다. 정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 나갈지 청사진도 나오지 않았다. “창조경제와 관련 있다”는 이유로 주가가 오르는 데 대해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DJ 벤처육성, MB 녹색성장 실패의 기억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는 건 과거의 경험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에 나서면서 코스닥시장이 급등했다. 99년 한 해 동안 코스닥지수는 네 배 가까이 상승했다. 특히 정보기술(IT) 기업 주가가 많이 올랐다. 수익모델조차 불분명했던 새롬기술(현 솔본)이 삼성전자를 넘어 SK텔레콤 주가에 육박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벤처는 무너져 내렸다. 한때 300에 육박했던 코스닥지수는 8개월 만에 51로 80%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600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두 자릿수 지수가 창피했는지 당시 코스닥증권시장(현 한국거래소로 통합)은 10을 곱해 지수를 세 자릿수로 만드는 조치를 취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발표한 녹색성장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태양광·풍력 주가가 오르더니 곧 발광다이오드(LED)와 자동차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한 경량화 기술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부터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태양광 관련 회사인 OCI의 주가는 이때부터 2년 새 80% 넘게 떨어졌다. 풍력·조력발전과 절전형 조명 기업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과정을 겪었다.



 사실 새 정부가 경제정책을 내놓고, 여기에 따라 주식시장이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중국·인도의 성장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한 데다 중동 지역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정책이 발표되자 엑손모빌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기업의 주가가 2년 새 두 배로 뛰었다.



 한국의 벤처육성과 녹색성장 정책도 어찌 보면 당연한 비전 제시다. 하지만 이들 두 정책은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벤처기업의 이익이 나아지지 않았고, 횡령과 주가조작 등으로 도덕성까지 의심받았다. 신뢰 하락으로 코스닥시장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시초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녹색성장이 갑자기 몰락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자 이후에도 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다른 하나는 실적 부진이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회사가 나오지 않자 투자자들이 외면해 버렸다.



돈 버는 회사 없으면 개인투자자만 큰 손실



 정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코스닥지수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1999년 12월~2000년 1월에 개인들은 코스닥시장에서 약 1조2000억원을 순매수했다. 태양광 기업 OCI를 개인들이 제일 많이 산 시기 또한 태양광 지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개인들이 ‘상투를 잡았다’는 얘기다. 이는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 때문에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지금은 붐을 이루고 있지만 몇 년 후에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창조경제가 기업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정부가 벤처를 적극 지원했지만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지는 못했다. 녹색성장으로 주목받던 기업 역시 정책의 무관심과 세계적인 신재생에너지산업 불황이 더해지면서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창조경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주식시장에서 나오는 이유다.



,투기 방지책과 지원기업 선별에 달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창조경제의 미래는 벤처·녹색성장보다 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다. ‘녹색성장’과 ‘벤처 육성’의 경우 단어만 들어도 어떤 의미인지, 정부가 이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창조경제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기 때문이다. 자칫 ‘창조경제’를 테마 삼아 엉뚱한 주식이 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짙은 상황이다.



 투기 방지책도 마련돼야 한다. 벤처와 녹색성장의 사례에 비춰볼 때 창조경제도 주식시장에서 많은 테마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벤처 육성 정책은 시행 초기 발생한 투자자 손실 때문에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이래서는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얻어가며 뚝심 있게 정책을 밀어붙이기 힘들어진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창조경제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기업을 잘 선별해야 한다. 정책 발표 초기에 다양한 기업이 후보로 거론되겠지만, 정책을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갖춘 회사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 지원과 시장의 평가가 엇갈린다면 정책을 펴나가면서 치러야 하는 비용이 커질 수 있다. 주식시장은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야 주식시장이 장기적인 성장의 기반 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종우(51)=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우경제연구소를 잠시 거친 뒤 줄곧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03년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만 10년간 교보·HMC투자·솔로몬투자·아이엠투자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직업이 센터장’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2007년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을 넘었을 때 “미국 경기가 좋지 않다”며 “코스피가 140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내 증권업계에서 위기를 내다본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 이듬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고 주가지수는 곤두박질쳤다. 주식시장을 전망할 때 늘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 비관론자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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