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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제민주화, 포퓰리즘 아니다

중앙일보 2013.05.07 00:16 종합 33면 지면보기
신광식
KDI 초빙연구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서 경제 부흥을 이루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논의되자,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과 성장우선론이 제기되고, 경제민주화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켜 침체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경제민주화가 대중적 정서와 기대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들을 옥죄고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해서 결과적 형평을 이루자는 것이며, 그래서 경제적 효율성을 해치고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다. 이런 시각으로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왜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 경제발전론의 대가인 슘페터가 통찰했듯이 자본주의의 진정한 발전의 원동력은 창의와 혁신이며, 이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다. 이 발전의 핵심 요소들은 ‘균등한 경제활동의 장’(level playing field)이 마련되어야 발현될 수 있다. 시장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정당한 경쟁과 거래의 장이 될 때, 사람들의 창의와 혁신이 활성화되고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아제모글루와 로빈슨은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균등한 경제 활동의 장’을 제공하는 ‘포용적 경제시스템’이 번영의 관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부터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어 오늘날의 생활을 누리게 된 것은 누구에게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 및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 제공되는 ‘균등한 경제 활동의 장’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의 틀이 국민들의 도전과 근면을 이끌어 고속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선진 경제의 추격을 통한 성장 한계에 봉착해 있다. 선도형의 창의와 혁신이 발휘되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한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성장 과정에서 경제력이 집중되어 힘의 불균형이 심해졌고 그 힘이 남용돼 시장이 ‘균등한 경제 활동의 장’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울어진 경제 활동의 장’에서는 사람들의 창의와 혁신이 발휘될 수 없으며, 경제는 역동성을 상실한다.



 그래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는 번영의 기반인 ‘균등한 경제 활동의 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갑을 관계’를 ‘대등 관계’로 바꾸어 공정하고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부당 내부 거래 금지는 사업 기회의 균등을 확보하려는 것이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는 경제 주체들 간의 법적 대등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1890년에 반독점법을 만들어 부당한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을 강력하게 규율하는 나라다. 열린 시장과 역동적 경제를 만들려는 이런 진지한 노력이 20세기 미국의 지속적 번영을 뒷받침해왔다.



 우리의 경제 상황이 어려운 만큼 기업의 투자 확대와 성장률 제고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킬 필요는 없다. 경기는 부침을 반복하며, 단기적 투자 확대를 통한 경기 진작은 일시적인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은 창의와 혁신을 통한 지속적 발전이며, 이는 창조경제가 꽃피는 균등한 경제 활동의 장을 조성해야 실현될 수 있다.



 물론 경제민주화도 과잉 입법돼선 안 된다. 잘못 입법되면 시장경제의 활력을 저해한다.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올바로 추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신 광 식 KDI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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