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남서 치러진 유일한 과거시험 안동 도산별과 221년 만에 재현

중앙일보 2013.05.06 00:45 종합 19면 지면보기
조선 정조의 특명으로 시행한 도산별과(陶山別科)가 221년 만인 4일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에서 재현됐다.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서 참가한 유림들이 한시 짓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춘일유도산억별시’(春日遊陶山憶別試, 봄날 도산에서 별시를 생각하다).


유림 120명 참가 … 김호철씨 장원

 파발 행렬과 취타대 연주에 이어 시험관이 밀봉한 어제통(御題筒)을 열자 과거시험의 시제(詩題) 여덟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붉은 천을 뜯어내자 압운 넉 자가 나타났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시험문제를 기둥에 내걸었고 과거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4일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조선시대 지방에서 치러진 유일한 대과(大科) 시험인 ‘도산별과’가 221년 만에 재현됐다. 그동안 도산별과 형식을 빌린 한시백일장은 19차례 열렸지만 문헌자료에 근거한 특별 과거시험을 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동시가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한 행사는 퇴계 이황(1501∼1570)의 위패가 모셔진 상덕사에서 조선 정조가 올린 제사를 본뜬 고유제로 시작됐다. 이날 별과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유림 120여 명이 참가했다. 시제의 압운은 시·도의 원로 3명으로 구성된 시관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정했다. 도포와 유건 차림의 참가자들은 돗자리에 줄지어 앉아 3시간에 걸쳐 시험을 치렀다. 별과의 결과 영주에 사는 김호철(58)씨가 갑과 장원으로 급제해 교지를 받고 어사화를 썼다.



 1792년 도산별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퇴계가 돌아가신 지 222년 만이었다. 당초 서원 강당인 전교당 앞뜰에서 시험을 치를 계획이었지만 1만여 명에 이르는 유생이 모여들면서 시험장소는 서원 앞 소나무 숲으로 변경됐다. 이날 시험을 친 유생만 7228명에 제출된 답안지는 3632장에 이른다. 경상좌도와 우도를 가리지 않고 또 나이가 많아 과거를 포기한 사람들까지 모여든 것이다. 정조는 답안지를 몸소 채점해 1등과 2등에게 초시(初試)와 회시(會試)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당시 강세백이 장원으로 급제해 이후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도산서원 앞에 남아 있는 ‘시사단’은 도산별시가 열린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796년 조정에서 세운 비석이다.



송의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