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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터질 듯 2000원 김밥 … 20㎡ 가게서 하루 5000줄 팔아요

중앙일보 2013.05.06 00:40 경제 2면 지면보기
2일 서울 방배동 해남원조김밥에서 정기웅 사장과 아내 문금석씨가 유부김밥을 만들고 있다. 아내가 김밥을 말면 남편이 포장한다. 김밥 한 줄 포장할 크기로 순식간에 알루미늄 포일 한 통을 척척 뜯어낸다. [김성룡 기자]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으로 한참 들어가면 ‘포장·배달전문’이라고 써붙여 놓은 20㎡(6평) 남짓한 허름한 김밥집이 있다. 안에 들어서면 큼직한 6구 가스레인지 하나, 대형 밥솥 2개, 3~4명이 겨우 김밥을 쌀 수 있는 조리대가 전부다. 앉아서 김밥을 먹을 만한 공간이 없다. 김밥 재료상자까지 가게 밖에 잔뜩 쌓여 있다. 그런데 이 작은 ‘해남원조김밥’의 판매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네, 네. ○○여대 5000줄요?” “한강둔치 쪽은 1800줄 주문 들어왔지?” 김밥집을 운영하는 정기웅(48) 사장과 아내 문금석(45)씨가 두꺼운 공책에 주문을 연신 적는다. 2대에 걸쳐 32년째 성업 중인 ‘김밥집의 비밀’을 사장 부부에게서 직접 들었다.

위기의 골목상권, 강소상인에게 배우자 ②
정기웅 해남원조김밥 사장님 주문 줄 잇는 비결이 뭡니까



TV출연·홈페이지? 다 필요 없어요



밥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속이 꽉 찬 김밥.
 아이고 기어이 이 밤에 취재를 왔네. 지난번 SBS ‘생활의 달인’도 바쁘다고 못 오게 했는데. 이름나 봐야 우리는 좋을 게 없어요. 지금도 손이 모자라서 주문을 다 못받는데, 뭐. 몇 년 전에 우리도 남들처럼 홈페이지를 만들까 하다가 어차피 지금 들어오는 주문도 다 감당 못한다 싶어 그만뒀어요. 1982년 어머니(73)께서 방배동 남부시장에서 장사할 때부터 잘됐어요.



김밥 속이 다르거든요. 고기 대신 유부랑 우엉을 볶아서 넣어요. 요즘은 웰빙이 유행이라 더 인기 있는 것 같아요. 단무지도 다르죠. 김밥집 99%가 공장에서 만든 단무지를 쓰지만, 우리는 꼭 직접 절여서 담가요. 쌀도 국산만 쓰고. 남편이 공무원 출신이거든요. 아버님께서 연로해서 배달을 못하시게 되자 14년 전에 물려받았어요. 도매상에서 “미국쌀이 훨씬 싸다”고 권해도 “식당 하는 사람부터 ‘식량 안보’를 생각해야 한다”며 말문을 막아요. 우엉 같은 건 솔직히 중국산이에요. 유부김밥 한 줄(10개)에 2000원인데 국산 재료로는 감당을 못해요. 하지만 중국산도 A급, B급이 다 있어요. 우리는 제일 좋은 걸로 써요. 우리 집엔 쇠고기 김밥이 없어요. 단가를 맞추려면 질 나쁜 고기밖에 못 쓰니까 아예 안 만들어요.



김밥에 밥이 거의 안 보인다고요? 하하. 속을 많이 넣어야 맛있잖아요. 괜찮아요. 몇천 개씩 대량 판매하니까 그래도 가격은 맞출 수 있어요. 국물도 안 주고, 가게에서 먹고 가지도 않잖아요. 김밥은 포일에 둘둘 말아 포장해 주면서 일회용 젓가락은 다른 집보다 고급인 것 같다고요? 맞아요. 더 비싼 거예요. 몸에 더 좋을 것 같아 보여서요. 그렇게 해도 손해는 안 봐요. 돈 많이 벌었어요. 집도 사고 양평에 땅도 샀어요.



‘남부시장 유부김밥’ 2세대가 서로 돕죠



공동구매하는 유부가 가게 앞에 쌓여 있다.
 김밥은 여자가 싸야 돼요. 하루에 2700줄까지 싸 봤어요. 출퇴근 아주머니 세 분과 함께요. 그런데 5000줄씩 어떻게 주문을 받느냐고요? 다른 집에 주문을 나눠줘요. 맞아요, 김밥 맛이 차이가 나면 큰일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맛을 인정하는 네 군데 하고만 같이 해요. 사실 원래 ‘유부김밥’은 방배동 남부시장에서 우리 어머니 세대 때 시작됐어요. 이제 다 은퇴하시고 우리집은 아들이 물려받고, 다른 집은 여동생·조카가 물려받는 식으로 다음 세대로 넘어간 거죠. 그래서 방배동에 유명한 김밥집이 많은 거예요. 사당김밥·한가람김밥 등 다 남부시장 2세대들이에요. 우리집에서 배워간 서울교대 앞 산들김밥까지 다섯 집이 어느 한 군데로 주문이 몰리면 나눠서 맡아요. 재료가 떨어지면 급히 다른 집에서 유부볶음이며 당근도 공수해 올 만큼 사이가 좋아요.



10여 년 전부터 핵심재료인 유부도 공동으로 구매해요. 가락시장에서 중간 도매상을 거치면 유부 10㎏ 한 상자에 4만원인데, 직거래하면 3만4000원이거든요. 요즘 같은 때는 다섯 집이 일주일에 유부 100상자 넘게 써요. 일주일에 세 번 우리집으로 다 배달시켜 놓고 다른 집에서 와서 가져가요. 에이, 무슨 수수료를 받아요. 서로 좋자고 하는 건데. 보통 가게는 재료 떨어지면 셔터문 내리고 들어간다지만 우리는 문 열어놓고 주문 받아요. 손님도 김밥이 필요하실 테고 다른 네 가게로 연결해 드리면 좋잖아요.



1년은 김밥에만 매달려야죠



 2세대라고 다 잘된 건 아니에요. 부모님 세대 때부터 고정 고객이 있어서 홍보할 필요는 없지만, 그 맛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거든요. 우리 친척도 3개월 배우고 김밥집 차렸다가 잘 안됐어요. 다른 유부김밥집도 “지인이 좀 배워서 점원까지 여러 명 데리고 나가 차렸는데도 실패했다”고 하더라고요. 김밥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옆에서 보는 거랑 내가 직접 해보는 건 달라요. 저도 결혼하고 5년 동안 가게에 나와 어머님을 도왔고, 물려받은 뒤에도 2년은 어머님하고 같이 일했어요. 적어도 1년은 바깥 출입을 끊고 김밥에만 매달려야죠.



솔직히 이 장사 하면 계절 바뀌는 것도 몰라요. 고등학생 두 딸이 유치원 때 가게를 물려받았는데 빨래할 시간이 없어 그 어린 것들한테 엄마 속옷을 입혀 보낸 게 지금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솔직히 우리 가게에 와보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요. 돈 버는 것만 보이니까요. 하지만 하루만 일해 보라면 다 도망가는걸요. 일손이 모자라서 주문을 더 못 받는 거예요. 웃돈을 얹어준다고 해도 다들 못하겠대요.



요즘 사람들은 다 쉬운 것만 하려고 해요. 고생 안 하고 깨끗한 자리에서 이문이 많이 남는 것만 찾아요. 체인·커피숍 이런 거요. 그건 정말 대기업만 도와주는 거거든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맛있는 가게 같은 거 많이 나오잖아요. 좀 고생이 되더라도 그런 가게 찾아가서 배우는 게 좋지 않겠어요.



졸음운전 교통사고로 문 닫을 뻔했어요



 사실 지난해 여름에 김밥집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애들 아빠가 졸음운전하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거든요. 10년 넘게 매주 일요일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커피숍에만 1200줄씩 납품했어요. 일요일 아침에 배달해야 하고 다른 주문도 있으니까 잠을 거의 못 잤죠. 토요일 오후 9시까지 일하고 11시에 다시 나와서 재료 준비하고 일요일 새벽 1시부터 저녁 6시까지 김밥을 싸는 생활이었어요. 그래도 막내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대신 가을부터 온누리교회 일은 그만뒀어요.



지금은 일요일 새벽 3~4시에 나와요. 그래도 2000줄 정도는 싸요. 애들 공부시키고 나면 일요일은 쉬는 게 꿈이에요. 가게가 낡았죠? 19년이나 됐으니까요. 작지만 일하는 데는 지장 없어요. 옮길까 했었지만 지금도 잘되는데요, 뭐.



글=구희령 기자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사진=김성룡 기자



◆ 정기웅·문금석 사장 부부의 김밥 철학



“우리 집에서 한 달만 일해 보세요. 그러면서 교회 갈 수 있으시다면요.”

- 단골 교회 신도가 “그렇게 많이 팔아주는데 교회도 한 번 안 나오느냐”고 하자.



“내 물건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팔고 싶지 않아요.”

- 50줄을 주문한 손님이 30줄을 취소해도 선금 받은 것까지 두말 않고 내준다며.



“한두 줄 손님이 수천 줄 손님보다 먼저예요.”

- 대량주문은 담당자가 바뀌면 끝인 데 반해 동네 손님은 평생 고객이라 먼저 판매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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