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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차등 끄고, 문 잠그고 … 가까운 곳 웃돈 내라는 택시들

중앙일보 2013.05.06 00:37 종합 19면 지면보기
서울시 도로교통과 단속 직원들이 4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서울시내로 가려는 손님들의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들을 특별 단속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3일 자정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9번 출구. 빈 택시 10여 대가 ‘빈차’ 표시등을 끈 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 택시기사에게 “삼성역으로 가자”고 말하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대로 지나갔다. 또 다른 택시는 아예 문을 걸어잠그고 창문만 내린 채 행선지를 물었다. “삼성역”이라고 외치자 택시기사는 “일이 끝나 집에 가는 길이고 방향도 다르다”며 지나쳤다. 강남역에서 삼성역은 택시비 4700원 정도가 나오는 거리(약 3.5㎞)다.

서울 승차거부 단속 현장
10대 중 7대는 시내 방향 외면
"장거리 태워야 사납금 채운다"
일부 기사, 신고 여성에 욕설도



 이날 자정부터 오전 2시까지 중앙일보 취재진이 강남역부터 9호선 신논현역을 오가며 택시를 잡아본 결과 10대 중 7대가량은 서울 시내 방향으로의 운행을 거부했다. 탑승에 성공하더라도 “손님이 많은 시간대니 가까운 곳은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같은 시각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도 사정은 비슷했다. ‘빈차’ 표시등을 켠 택시 10여 대가 줄지어 있었지만 20여 명의 시민이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일부 택시는 손님이 없는데도 ‘빈차’ 표시등을 끈 채 수도권으로 가는 ‘장거리 손님’을 물색했다. 택시를 못 잡은 일부 시민이 도로 한복판으로 나오는 바람에 이 일대 도로는 인파와 차량들이 뒤섞여 큰 혼잡을 빚었다.



 중앙일보 취재진은 지난 2~3일 강남·홍대 등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서 택시 승차 거부를 단속하는 현장을 취재했다. 이달 1일부터 한 달간 서울시 교통지도과에서 실시 중인 특별 단속 현장이다. 서울시는 매일 밤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홍대입구·종로·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지역 20개 지역에 단속반원을 투입해 집중 단속을 하고 있다. 승차 거부가 적발되면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운행정지(1차 적발 시 5일, 2차는 10일) 명령이 내려진다.



 이런 방침에도 불구하고 택시들의 승차 거부는 여전했다. 이틀간 40여 건의 승차 거부 택시가 적발됐지만 단속 지역에서 50여m 벗어난 곳에선 기사들이 버젓이 승객을 골라 태웠다. 단속원 홍승태(59)씨는 “오후 10시부터 4시간가량 단속하지만 적발한 기사들과 다투다보면 다른 기사들의 불법행위를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선 택시기사들의 강한 저항 때문에 단속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 3일 오전 1시쯤 승차 거부를 하다 적발된 한 택시기사는 도로 한복판에서 “다른 택시들도 전부 적발하라”며 한 시간 넘게 고함을 쳤다. 또 다른 기사는 승차 거부를 신고한 젊은 여성 승객 2명에게 "XX년”이라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택시기사 임모(53)씨는 “새벽시간에 영업하는 건 대부분 회사 택시”라며 “장거리 손님 위주로 태워야 그나마 사납금을 채우고 4만~5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단속에 걸리면 20만원 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하므로 기사들이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속대원들은 서울시 표시가 있는 모자와 검은 조끼 등 유니폼을 착용한다. 이 때문에 단속반원을 먼저 발견한 기사들은 아예 자리를 뜰 때가 많다. 서울시 교통지도과 관계자는 “택시기사들이 ‘함정 단속’을 한다고 항의해 유니폼을 입다 보니 단속 사실이 미리 노출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김익기(교통공학) 교수는 “승차 거부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선 수요와 공급 간의 균형을 맞추는 선에서 요금조정을 하거나 택시 감차를 통한 시장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손국희·이승호 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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