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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핵무기론 안보 보장 못한다

중앙일보 2013.05.06 00:36 종합 37면 지면보기
가레스 에번스
전 호주 외무장관
지난 4월 22일부터 5월 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선 2015년 개최될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에 대비해 189개국 대표단이 모였다. 오늘날 의도적으로 핵전쟁을 일으킬 나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대표단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오늘날 핵 관련 정책에선 30년 전 냉전 시대의 계산법이 횡행하고 있다. 핵 억지력의 논리와 상호확증 파괴의 역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핵미사일이 미국의 선제공격에 의해 지상에서 파괴될까봐, 그리고 자국의 보복 능력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의해 약화할까봐 걱정하면서 추가 군축회담에 소극적이다. 또 약 1000기에 이르는 전략 핵무기를 몇 분 내에 발사할 수 있는 비상대기 상태로 유지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 또한 자국 핵미사일의 발사대기 상태를 해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의 2000기에 이르는 대량파괴무기가 고도의 대기 상태로 서로 겨누고 있다. 그 탓에 사람이나 시스템에 의한 오류, 또는 사이버 공작에 의해 파국이 일어날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소위 핵 억지력 논리는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낸다. 러시아와 미국은 세계의 핵무기 1만9000기 중 1만8000기를 보유하고 있다. 양국이 자신들의 무기고를 대량 축소하지 않는다면 여타의 핵 보유국에 핵무기를 줄이라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 방어망이 미국에 비해 열세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현재 240기로 추정되는 핵미사일 숫자를 늘리고 현대화하는 중이다. 이에 발맞춰 인도 역시 무기고를 확충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 나라는 NPT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100기를 보유 중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인도를 앞서기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



 진상을 말하자면 핵 보유국 중 핵무기를 궁극적으로 제거하기 바라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 주된 이유는 냉전의 논리와 언어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국가의 경우는 대외적 지위와 특권이라는 요인도 여기에 한몫 거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군축을 지향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희망적인 미사여구는 바로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핵 보유국 중에서 자국 핵무기의 폐지는 고사하고 숫자라도 상당히 줄이겠다는 계획표를 제시할 나라도 전혀 없다. 이들 국가의 핵무기 보유량, 핵분열 물질 비축량, 군 현대화 계획, 이미 발표한 독트린, 이미 알려진 배치 관행 등의 모든 요소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핵무기를 무한정 보유할 것이며 이들 무기가 자국의 안보 정책에서 계속 역할을 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오늘날 중동과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핵 클럽에 가입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핵 보유국들이 군축을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핵확산금지체제를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힘을 보태기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핵무기 보유는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정당화될 수 있지만 너희 나라 것은 그렇지 않아”라는 식의 이중 기준을 목격한 지도자들은 필연적으로 냉혹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더욱 안전하고 제정신인 세상을 만드는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핵보유국이 냉전 시대의 사고 틀을 깨고 오늘날 상황에서 핵 억지력의 전략적 가치를 재검토하며 핵무기고를 보유하는 데 따른 막대한 위험을 다시 측정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핵무기는 문제이지 해결책이 아님을 핵 보유국들은 인식해야 한다. @Project Syndicate



가레스 에번스 전 호주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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