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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분야 개척했다, 세계와 소통했다, 시대를 선도했다…미래 비전 제시한 젊은 세대

중앙일보 2013.05.06 00:35 종합 20면 지면보기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네 번째 영예를 안은 올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를 넘어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강준혁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장,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맡았다.


제4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이홍구 심사위원장은 “기성세대의 과거 업적을 포상하는 기존 상들과 차별화해 40대 연령 안팎 젊은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격려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올해는 특히 한국 사회와 세계 시민들에게 소통의 위대함을 보여준 가수 싸이를 선정한 점에 ‘창조인상’의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과학부문]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권성훈 교수





권성훈(38)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어젠다인 창조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실현될 것인지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과학자다. 그는 의학과 공학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융합,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권 교수가 개발한 대표적인 기술은 ‘초고속 확장형 생물검증 플랫폼’이다. 질병진단과 신약개발에서는 반복해서 실험을 해야 하지만 작은 분석 키트(wall plate) 안에서 수많은 실험을 한꺼번에 수행함으로써 분석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그는 “개개인에게 적절한 항생제를 찾을 경우 지금은 나흘씩 걸리지만 새 기술을 적용하면 이틀 안에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국가 연구개발 우수 성과로 선정된 이 기술은 권 교수팀이 직접 개발한 세 가지 요소(要所)기술이 합쳐져 탄생했다.



 첫째 기술은 구조색(structural color) 프린팅 기술이다. 염료로 색깔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장(磁場)의 세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나노입자를 활용한다. 딱정벌레·전복의 껍데기 색깔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것처럼 산화철을 일정하게 인쇄(배열)한 뒤 자장을 변화시키면 여러 색깔이 나타난다. 다양한 색을 조합하면 바코드나 QR코드처럼 ‘컬러코드’로 활용될 수 있다. 카멜레온 잉크라고도 불리는 이 인쇄기술은 위조지폐 방지에도 활용될 수 있다.



 둘째 기술은 자성 액추에이터(actuator) 제작 기술이다. 자성을 띠는 나노입자를 서로 어긋나게 연결한 다음 자기장을 가해주면 입자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게 된다. 극소량의 물질로 생화학 반응을 진행할 때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반응액을 저어주는 효과를 낸다.



 셋째 기술은 미세입자 생성 기술이다. 고분자 물질을 이용해 머리카락 두께와 비슷한 100~20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크기의 입자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권 교수팀은 이 세 가지 기술로 지능성 미세입자를 만들어냈다. 생물 검증에서는 먼저 여러 신약 제품마다 컬러코드를 부여하고, 해당 컬러코드를 가진 지능성 미세입자에 신약을 부착하게 된다. 그런 다음 수십 종의 미세입자를 한 생물 시료에 한꺼번에 집어넣고 반응을 진행시킨다.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액추에이터를 가동시킨다. 반응이 끝나면 현미경으로 어떤 미세입자에서 반응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데, 컬러코드만 확인하면 해당 미세입자에 어떤 약품이 부착됐는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기술은 사이언스와 네이처 머티리얼스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6편의 논문으로 게재됐고, 그중 두 편은 표지에 소개됐다.



 권 교수는 최근 DNA 염기서열 분석을 빠르게 진행하는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루 이틀 안에 인체 유전자를 완전히 분석해낼 수 있다면 체질에 맞는 약품을 골라 투약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찬수 기자



◆권성훈 교수= 1998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의대에서 의용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버클리 로렌스 국립연구소에서 나노기술 분야를 연구했다. 2006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지난해 서울대의 ‘창의선도 연구자’ 8명 중 한 명으로 선정돼 매년 2억5000만원씩 3년간 ‘특별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사회부문] 가수 싸이





‘싸이(PSY·36)’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그 이름 과연 임자 만났구나 싶다. ‘싸이코(psycho)’를 줄여서 싸이다. ‘어딘가에 미쳐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본명이 박재상인데, 어쩐지 예명 싸이가 본래 그의 이름인 것만 같다.



 그는 2001년 ‘새’로 데뷔해 지난 10여 년간 음악에만 미쳐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싸이표 B급 정서로 가득한 ‘강남스타일’이 이른바 ‘싸이 현상’을 촉발시켰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 15억8000만 건을 기록 중이다. 유튜브 관계자는 “향후 몇 년간 깨지기 힘든 세계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치도록 치열했던 그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싸이는 지난달 13일 발표한 ‘젠틀맨(Gentleman)’으로 ‘싸이 현상’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역시 발표한 지 보름 만에 2억4300만 건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평균 조회수 1620만 건으로 ‘강남스타일’(일평균 500만 건)보다 빠른 속도다.



 싸이는 음악으로 세계인을 홀렸고, 공감시켰으며,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그의 음악에 담긴 익살스러운 풍자는 혁신적 발상이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싸이가 제4회 홍진기 창조인상 사회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데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홍진기 창조인상 추천위원인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심사위원단이 주목한 것은 싸이가 창안하고 개성 있게 연출한 통합과 행복의 보디 랭귀지(body language)”라며 “싸이는 남녀·세대·인종·문명 간 경계를 허물고 모든 지구촌 사람들을 공존의 마당으로 안내한 통합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실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220여 개국에서 조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엔 가입국 수(193개)보다 많은 수치다.



그가 음악을 통해 구축한 ‘싸이(PSY) 월드’는 인종·국가·민족 간 무의식적 장벽을 허물었다. 싸이의 미국 매니저인 스쿠터 브라운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인터넷으로 인해 세계가 매우 좁아졌는데 싸이는 노래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기쁨을 전달했다”며 “전 세계가 힘든 일을 겪을 때 싸이의 음악은 한국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전 세계인들까지 즐겁게 했다”고 평가했다.



 싸이의 두 번째 글로벌 싱글인 ‘젠틀맨’은 국내적으로는 북한발 안보 위협이 강도를 높여 가던 지난달 중순 발표됐다. 북한 문제는 우리 사회를 진보·보수로 양분하는 대표적인 갈등 이슈다. 그러나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싸이 콘서트에 모인 5만 명의 관객들은 이 같은 갈등을 잠시 잊은 듯했다.



그들은 싸이의 음악 앞에서 한데 엉켜 춤추고 노래했다. 무대 위의 싸이는 “사회적으로는 통합과 행복의 혁신자이자 전도사”(송호근 교수)였다.



  송호근 교수는 “21세기 인류는 세계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극단적 사회분열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싸이는 갈등과 반목에 젖은 이 시대 지구촌 사람들에게 보편적 소통 방식이 가능함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싸이(PSY)=본명 박재상. 1977년 서울 출생. ▶미국 버클리음악대학교 중퇴 ▶2001년 1월 1집 앨범 ‘PSY from the Psycho World’로 데뷔 ▶2012년 11월 옥관문화훈장 수훈



[문화부문] 축제기획자 김승근





김승근(46)씨는 음악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뼛속까지 음악인이다. 음악은 천재들이 하는 일이라는 걸 느꼈고,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힘들지만, 음악인 모두가 천재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안다.



 “전 주인공은 아니죠. 그림을 벽에 걸 때 못같이 받쳐주는 역할이 제 몫입니다. 무대 앞쪽에 서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뒤에서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죠. 한국 음악을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그는 민화연구가였던 선친 김철순(1931~2004)과 소프라노 박노경(78·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씨 사이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시대를 내다보는 눈 밝은 분이었어요. 당시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한국 음악이 앞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하셨죠. 그 말씀이 옳았어요. 국악은 현대 음악 중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우리만 할 수 있는 창의적 분야죠.”



 그가 서울대 음대 국악과를 졸업하던 1989년엔 대학원에 국악 전공이 없었다. 은사인 이성천 교수가 외국에 나가길 권하며 자기 전통을 어떤 방식으로 현대화하고 있는지 보려면 미국보다 유럽이 낫겠다고 조언했다. 헝가리 리스트음악원에서 2년을 보내며 가난하지만 훌륭한 음악인들과 벗이 되어 음악의 힘을 배웠다.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서는 운명처럼 윤이상(1917~95)을 만났다.



 “유럽 구석구석 음악제를 뒤졌는데 그 현장마다 한국 출신의 작곡가 윤이상이 있었죠. 1921년 창설된 ‘도나우에싱겐 페스티벌’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인구 4만 명의 도시가 금·토·일 주말 딱 사흘 여는 음악제에 전 세계 현대음악 애호가가 몰려와 최고 수준의 창작곡을 나누는 모습이 놀라웠죠. 통영국제음악제는 그 순간에 제 머릿속에서 태동한 겁니다.”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 작지만 친밀하고 오래 지속가능한 음악 무대를 세우겠다는 그의 꿈은 10여 년 만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음악제로 피어났다. 해마다 3월이면 14만 명 도시에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와 세계 수준의 현대음악을 즐긴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음악제가 있듯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 음악제가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자그마하고 소박한 도시 통영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좌 같은 곳과 경쟁하는 게 아니니까 가능했던 거고요. 이제 현대음악계는 아시아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게 됐어요. 통영이 그 센터 구실을 하자는 거죠. 국제적 수준과 소통에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기획하고 꾸려가는 역할이 곡을 쓰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내 식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식으로 자기 자신과 싸울 수 있게 자극한다. 그게 창작이고 창의이기 때문이다. “윤이상 선생이 지향하셨던 ‘아시아의 소리를 찾아서’ 열린 창이 통영입니다. 그 창작의 산실이자 잔치의 마당을 오래 지속시켜 나가는 길을 닦으라는 격려로 이 상을 받겠습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승근=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음대 국악과 졸업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 독일 베를린 음대에서 수학 ▶동아음악콩쿠르와 대한민국 작곡상 수상 ▶ 대표작 ‘거문고 독주곡 에밀레’ ‘해금 4중주’ ‘실내합주곡’ 등 ▶통영국제음악제 이사 겸 운영위원 ▶ 서울대 음악 국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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