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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신뢰'라는 상품

중앙일보 2013.05.06 00:31 종합 38면 지면보기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지난주 상하이의 중국 친구 원(文)선생 가족이 서울에 왔다. 노동절(5월 1일) 휴가를 겸한 가족 나들이였다. 쇼핑을 하고 싶다는 말에 시내 한 면세점으로 안내했다. 친구가 시계를 고르더니 3개를 달라고 했다. 가격표를 보니 800만원이 넘었다. 2400만원, 카드 결제였다. 그의 씀씀이에 놀랄 수밖에 없다. ‘상하이에도 이 브랜드 매장이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원 선생은 “있다. 그곳도 진짜를 팔 것이다. 그러나 난 안 믿는다”고 답했다. 같은 제품이라도 상하이에서 파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원 선생 부인은 백화점을 위아래로 돌며 이것저것 사담았다. 값은 문제가 안 됐다. 그는 좋다 싶으면 손을 뻗었다. 지하 식품코너를 이리저리 돌던 그는 “먹을 게 참 많다”며 “상하이에서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믿을 만한 음식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식품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푸념이다.



 또 터졌다. 이번에는 쥐고기를 양고기로 속여 팔아넘긴 일당이 중국 경찰에 잡혔다. 10여 년 전, 기자가 상하이 특파원으로 일하던 때에도 ‘쥐고기로 양고기 꼬치를 만든다’는 풍문이 나돌곤 했다. ‘쥐고기 값이 양고기보다 더 비쌀 텐데…’라는 생각에 ‘설마~’ 했다. 그 풍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혹 내가 먹은 양고기 꼬치 중에 쥐고기가?’ 중국 인터넷에서는 지금 난리다.



 지난 3월에는 상하이 황푸(黃浦)강에 수천 마리의 돼지 사체가 둥둥 떠내려 왔다. 중국 최고의 국제도시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상하이 시민들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는 ‘상하이 사람들은 매일 아침 황푸강에 나가 돼지고기 수프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겠네…’라는 비아냥이 넘쳤다. 최근에는 조류 독감도 상하이에서 시작됐다. ‘중국 제품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원 선생의 한숨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신뢰의 위기’가 먹거리만의 일은 아니다. 정부와 공산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에도 금이 가고 있다. 도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농민공(농촌 출신 근로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경제 성장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민영기업들은 국유기업이 정부·은행 등과 결탁해 부(富)를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다. ‘공산당이 없다면 신중국도 없다(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는 말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만 통하는 진리로 변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 식품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중국에서 한국 우유와 분유가 특수다. 덕택에 몇몇 분유업체 주가는 지난 1년 사이 100% 넘게 급등하기도 했다. 원 선생이 면세점에서 2400만원을 주고 산 것도 단순 시계가 아닌 ‘신뢰’라는 상품이었다. 먹거리뿐이 아니다.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우리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신뢰를 담아 팔아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한국은 믿을 만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신뢰야말로 최고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한 우 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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