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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숭례문의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2013.05.06 00:28 종합 39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숭례문이 5년3개월 만에 복구됐다. 조선 태조 5년에 창건된 이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 전쟁 등 숱한 전란(戰亂)을 꿋꿋이 견뎌낸 숭례문은 2008년 2월 한 방화범의 불질로 석축만 남긴 채 무너지고 말았다.



 예(禮)자는 5행의 불, 5방의 남쪽을 가리킨다. 세로로 쓰인 숭례(崇禮)는 치솟는 불꽃(炎)을 뜻하는데, 남쪽 관악산의 화기(火氣)로부터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성문과 달리 현판을 종서(縱書)로 썼다고 한다. 그러나 양녕대군의 글씨로 알려진 천하의 명필도 방화 전과자의 미친 불질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숭례는커녕 비례(非禮)를 넘어 무례(無禮)도 이만저만이 아닌 역사 부정의 만행이었다.



 네로 황제는 로마 시가지에 불을 지른 뒤 광기에 휩싸여 키타라를 뜯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한다. 방화꾼들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탐미(耽美)와 정화(淨化)의 희열에 온몸을 떤다지만, 시커먼 재로 변한 숭례문의 잔해 앞에서 우리의 가슴은 마치 영혼이라도 도둑맞은 듯 아프게 타들어갔다.



 불이 나자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은 국보 1호에 대한 외경심 때문인지 초기에 적극적인 진화작업을 펼치지 못하고 불길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에 앞서 시청 앞 광장의 개방으로 시민들의 인기를 얻은 서울시는 화재감지기나 경보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숭례문을 덜컥 개방했고, 관리책임을 맡은 중구청은 경비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누전이나 방화로 인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면책약정까지 했다고 한다. 인기에 눈먼 포퓰리즘 행정은 국보 1호의 소실로 이어졌다.



 문화재의 수난은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양양의 낙산사와 창경궁의 문정전,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서장대 누각이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는 50년 가까이 물살에 깎여가는 중이다.



 문화재는 한낱 유물이 아니다. 그 자체가 시푸르게 살아 숨쉬는 역사다. 탈레반이 인류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폭파했을 때, 전 세계 지성들은 그 충격적 반달리즘 앞에 경악했다. 깨진 것은 바윗덩어리였지만 사라진 것은 역사요 날아가버린 것은 문화였기에.



 선진국들은 문화재를 국가의 핵심 기반(Critical Infrastructure)으로 지정하고 각개의 문화재마다 개별적으로 특화된 재난방지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복구된 숭례문에는 스프링클러, 열 감지기, 폐쇄회로 카메라 등을 두루 갖췄다지만 국보의 운명을 기계장치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웅숭깊은 역사의식, 세심한 보살핌의 손길이 문루(門樓)에 깃들어야 한다.



 역사는 복제될 수 없다. 그러나 숭례문의 복구는 단순 복제가 아닌 원형 그대로의 부활이요, 뛰어난 장인(匠人)들이 온갖 정성을 기울인 예술이기에 그 역사적 의미가 소중하다. 일제(日帝)가 헐어버린 기단(基壇) 양쪽의 성곽도 원래 모습을 되찾아 역사 복원의 뜻을 두텁게 했다.



 다만 숭례문이 언제까지 국보 1호의 상징성을 지킬 것인지는 의문이다. 무엄하게도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총독부 건물을 세운 일제는 숭례문을 조선 고적 제1호로 지정했는데, 그것이 대한민국 국보 제1호로 이어졌다. 숭례문이 대문이라면 경복궁은 본채다. 중건(重建)된 본채를 제쳐두고 새로 세운 대문을 국보 1호로 계속 남겨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그런가 하면 국보에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앞으로 범국민적인 논의가 요망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문화재 보호에만 소홀했던 것이 아니다. 자학(自虐)의 붓에 증오의 먹물을 찍어 써내려간 이데올로기 역사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상을 헐뜯는 역사왜곡의 불질 앞에 우리 청소년들이 벌거숭이처럼 노출돼 있다. “사람은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야 남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나라도 스스로 해친 뒤에야 남의 손에 망하게 된다(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 맹자의 경고가 섬뜩하다.



 복구돼야 할 것은 숭례문만이 아니다. 상처투성이인 우리의 역사의식에도 성찰 깊은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 ‘나라와 역사에 대한 예의’를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숭례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교육이 바른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600년 서울을 지켜온 어제의 숭례문이 남쪽의 화기를 막아냈다면, 오늘의 숭례문은 ‘서울 불바다’를 노리는 북쪽의 화기를 빈틈없이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온 국민이 숭례문의 수문장(守門將)이다.



이 우 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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