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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국민영웅 시상 '야구장 쇼'

중앙일보 2013.05.06 00:27 종합 23면 지면보기
5일 일본 도쿄돔에서 마쓰이 히데키가 시구를 하고 있다. 타자는 나가시마 시게오(요미우리 전 감독), 포수는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 등번호 96번의 아베 총리가 심판이다. [도쿄 로이터=뉴시스]
일본도 어린이날인 5일 최고 인기 프로 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 구장인 도쿄 돔에 세 명의 주인공이 섰다. 이날 이곳에선 국민적인 야구 스타 두 명에 대한 국민영예상 시상식이 열렸다. ‘미스터 프로야구’로 불리는 강타자로 자이언츠의 9년 연속(1965~73년) 우승을 이끈 나가시마 시게오(77·長嶋茂雄), 나가시마의 제자로 미·일 양국에서 홈런타자로 명성을 날린 마쓰이 히데키(39·松井秀喜) 두 사람이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상을 수여한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였다.


어린이날 도쿄돔서 요란한 행사
등번호 96번 입고 시구식 심판
“헌법 96조 뜻하나”에 “하하하”

국민영예상은 문화·체육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국민적 영웅들에게 일본 총리가 주는 상이다. 77년 홈런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오 사다하루(王貞治)를 비롯해 20명의 개인과 1개 팀(여자축구대표팀)이 역대 수상자다.



 이날 도쿄돔엔 5만 명이 넘는 관중이 꽉 들어찼다. 행사는 오후 1시20분부터 마쓰이의 은퇴식 → 국민영예상 수여식 → 시구식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일본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겠다는 아베 총리의 구상에서 출발했다. 그런 점에서 ‘기획 아베, 연출 아베’의 작품이었다.



 아베가 두 사람에 대한 시상을 검토하라고 내각에 지시한 건 지난해 12월 29일 원전 사고지인 후쿠시마(福島)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신칸센에서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는 구호를 내건 아베는 ‘자랑스러운 일본’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이벤트에 계속 골몰했다. 한 번에 한 명씩 수상했던 관례를 깨고 사제지간인 나가시마와 마쓰이를 묶어 이례적인 ‘더블 수상’ 이벤트를 짜낸 이도 아베였다.



 경제회복의 기대감 속에서 70% 넘는 고공 지지율 행진 중인 아베는 5일 국민 앞에서 자신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수상자 두 사람에게 표창장과 기념품 금배트를 건넨 아베는 두 명의 수상자보다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두 사람이 야구장에 들어오는 순간 분위기가 밝게 바뀌었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라며 “지난 10년여 동안 일본 경제가 어렵고,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이제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모두가 꿈을 갖고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것이 (아베노믹스 세 개의 화살이라는 금융정책·재정정책·성장정책에 이어) 네 번째의 화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는 등번호 3번의 나가시마와 등번호 55번의 마쓰이로부터 ‘등번호 96번 아베’라고 쓰인 자이언츠 유니폼을 건네받았다. 등번호 96은 제96대 총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평화 헌법 중에서도 아베가 가장 먼저 뜯어고치겠다는 ‘헌법 개정 절차 규정’이 헌법 96조란 점이 화제를 낳았다. “등번호가 헌법 96조와 같은 96번”이란 기자들의 지적에 아베는 “하하하” 웃으며 “96조에 대해 아직 충분히 국민적 논의가 이뤄졌다고는 말하기 힘들다”며 피해갔다. TV아사히는 “ 헌법 96조 개정을 어필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벤트의 압권은 시구식이었다. 마쓰이가 마운드에, 나가시마는 타석에 들어섰다. 자이언츠의 감독 하라 다쓰노리(原辰<5FB3>)가 포수 자리를 지켰고, 96번 유니폼의 아베는 심판을 맡았다. 마쓰이의 높은 볼에 나가시마가 헛스윙을 하자 아베는 오른손을 쳐들며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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