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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하나도 몇 년째 관찰 … 그래야 100% 가깝게 그려

중앙일보 2013.05.06 00:25 종합 24면 지면보기
이태수 작가가 사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마을은 생태적으로 풍부한 곳이 아니다. 추운 땅이라 생명체들이 버텨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다. 그런 그의 집 마당에 토종민들레가 딱 한 포기 피었다. 한낮에 활짝 피었다가도 금세 움츠러드는 꽃을 작가는 귀하디 귀하게 여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화는 외골수가 빚어갑니다. 한 길을 파는 집념이 없으면 콘텐트가 나올 수 없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즉 푹 빠져야 뭔가 이룬다는 말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옹고집’ 하나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옹고집이 콘텐트다 ① 생태 세밀화 그리는 이태수 화백



생태 세밀화를 논할 때 이태수(52)를 빼놓긴 어렵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얼마나 세밀하게 대상을 복사했느냐가 그의 그림을 남들과 구분 짓는 건 아니다.



 그건 그림보다 사진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문이다. 이씨는 사물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을 잡아내고, 이를 따뜻한 필치로 담아냈고 이태수라는 이름 석 자는 20여년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우리 산하의 동·식물과 함께 해온 그가 오랜만에 그림책 『알록달록 무당벌레야』(비룡소)를 펴냈다. 집 담벼락에 몰려든 무당벌레들이 떼지어 겨울잠을 자러 날아가는 모습을 보곤 몇 해를 관찰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냈단다.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 연천군 백학마을 방 한 칸 거실 한 칸짜리 조립식 주택에서 노모를 모시며 자연과 벗하는 그를 찾아갔다.



연천 조립주택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991년 첫 아이를 얻은 뒤 생태 세밀화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다. 『심심해서 그랬어』 등 보리 출판사의 ‘도토리 계절 그림책’으로 세밀화의 대표 작가로 부상했다. 아기 그림책부터 도감류까지, 보리 출판사가 세밀화 전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후엔 여러 출판사에서 작품을 냈고, 그가 낸 많은 책들이 절판되지 않고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미술사를 공부해보면 옛날에 그림이란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이었어요. 요즘엔 개인 소유가 되면서 너무 비싸잖아요. 나눌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아이들 그림책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땐 우리나라에 사과 한 쪽 제대로 그린 그림이 없었죠. 기초 자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작은 방은 노모의 침소, 거실은 그의 서재 겸 작업실이다.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도 고개만 들면 창 밖으로 마당이 내다보이는 구조다. 그는 몸이 빠른 관찰자다. 창 밖을 내다보다 인상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오면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뛴다.



 “저기 토종 민들레 보이세요. 몇 년째 관찰하다 보니 다른 책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을 건졌어요. 방울새가 민들레 씨를 파먹는 걸 봤죠.”



 그는 집 앞의 논을 6년째 기록해오고 있다. 물만 들어오면 시끄러울 정도로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고, 겨울엔 기러기 500여 마리가 먹이를 찾으려고 날아와 앉는다.



벌집 그리고 싶은데 살생은 안돼 고민중



『알록달록 무당벌레야』(비룡소)의 한 장면. 무당벌레가 번데기에서 나와 활짝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아예 지난 봄엔 마당에 작은 웅덩이를 파 물을 넣어뒀다. 멧비둘기도 물 마시러 오고, 여름엔 개구리도 두 어 마리 살고, 심지 않은 미나리 따위의 풀이 자랐다. 창을 더 넓히고 싶지만 너무 추워서 못 하고 있단다. 백학마을은 지난 겨울 영하 28도까지 내려갔다. 보일러가 세 번 얼어터졌다.



 - 세밀화 대표작가라 풍족하게 살 줄 알았다.



 “90년대 보리출판사는 인세를 개인이 갖지 않고 공유하는 협동조합 개념으로 시작했어요. 거기서 탈퇴한 뒤론 한 권에 인세 800만원을 받아요. 책 한 권 그리는 데 꼬박 1년 걸리니 그게 1년 수입이죠.”



 - 오래 걸리는 이유가 있나.



 “한 번에 한 권만 그려요. 취재를 다 해놔도 그리다 보면 뭔가 또 궁금한 게 생겨요. 그걸 해결해야 진도가 나가거든요. 자연은 내가 본 것과 안 본 것이 굉장히 차이가 있어요. 가령 무당벌레가 위험이 닥치면 죽은 체 한다는데,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남이 찍은 사진 보고 그냥 그리면 안 되거든요. 내 눈으로 확인한 게 100% 가깝게 가도록 노력하는 거죠. 글도 마찬가지예요. 문장이 좋아도 별 내용 없이 흘러가는 건 짜깁기에요. 물론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있어요. 젖먹이 동물은 겨울잠 자고 나면 배가 고픈데, 곤충들도 배고플까? 그런 건 어디 물어봐야 하나 고민스럽죠.”



 - 유별나게 어려웠던 작업이었다면.



 “육식성 벌인 쌍살벌을 몇 년 째 관찰하고 있는데 어렵네요. 벌집을 잘라서 안을 봐야 하는데, 그러면 죽이는 거라 못 하고 있어요. 우연히 말벌집 떨어진 걸 주워 그 안의 모습은 관찰했어요. 말벌과 거의 흡사하긴 할 텐데, 그래도….”



 - 이태수의 그림은 따뜻하다고 한다.



 “제 그림은 좀 널브러져 있어요. 세밀화라고 해서 정확하게 그리지 않고 좀 비뚤비뚤해요. 외곽이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그리면 딱딱해져요. 인간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 자연은 하나도 같은 게 없어요. 그걸 자로 재듯 잘라 규정짓는 게 더 어색하죠.”



풀을 알게 되면 함부로 안 밟잖아요



 - 생태 세밀화를 봐야 하는 이유라면.



 “알아야 아끼거든요. 아는 풀은 함부로 안 밟잖아요. 지천으로 널렸던 할미꽃도 지금은 농약으로 토질이 바뀌어 무덤에서나 볼 수 있어요. 일산에 살 땐 옆집 할머니가 밭에 치고 남은 제초제를 우리 집 마당에 선의로 뿌려준 적이 있어요. 주변의 생물도 없어지는 건 금방이에요.”



 - 요즘 세밀화 책이 많이 나오는데.



 “양은 많이 늘었어요. 질도 같이 좋아져야 하는데…. 풀 그림도 줄기가 동그란 놈, 타원형인 놈, 삼각형인 놈 다 다르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두리뭉실하게 그리는 거죠. 작가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엉터리가 많아요.”



 - 관찰력의 비결이 있을까.



 “관심의 차이가 관찰력의 차이죠. 나뭇잎 하나를 놓고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선을 반 정도는 보면서 그리고, 나머지는 상상해서 죽 그어버려요. 아이들에게 그냥 나무를 그리게 하지 말고 소나무면 소나무, 은행나무면 은행나무를 그리게 해보세요.”



연천=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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