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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7) 긴급조치 10호안

중앙일보 2013.05.06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1976년 7월 1일 전남 순천 농산물유통센터 기공식에 참석한 김재규 건설부 장관(오른쪽)이 현장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맨 왼쪽에 고건 전남도지사가 서 있다. 3년 뒤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중앙정보부장과 정무 제2수석으로 다시 만난다. [사진 국가기록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그를 사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일을 하며 만났을 뿐이다. YH무역 사건 강경 진압은 중앙정보부의 결정이었고 밀고 나간 인물은 김재규 부장이었다. 나는 치안본부 유흥수 치안감(전 의원)과 함께 경찰진입을 반대했지만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성향을 저돌적이라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긴급조치 10호 해선 안 돼" 신직수 특보가 보고했다



 10·26 사태가 있기 두 달 전인 1979년 8월께 일이다. 청와대 본관에서 회의를 소집한다는 연락이 왔다. 본관 소회의실에서 박 대통령과 신직수 법률담당 특별보좌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유혁인 정무 제1수석과 정무 제2수석인 나까지 6명만 참석하는 내밀한 회의였다.



 나는 청와대 정무 2수석이었지만 행정을 담당했다. 후에 행정수석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무와 관련한 업무는 정무 1수석 관할이었다. 정무 1수석만 참석해야 할 회의였는데 정무수석을 불러야 한다고 하니 정무 2수석인 나한테까지 연락해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안건은 ‘긴급조치 10호 안’이었다. 제안한 사람은 김재규 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박 대통령에게 이미 서면 보고를 한 상태였다. 회의 시작과 함께 박 대통령이 김 부장에게 말했다.



 “김 부장, 취지를 얘기해보세요.”



 김 부장은 10분 정도 긴급조치 10호 안에 대해 설명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취지는 이랬다.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김 부장의 말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신직수 특보를 보며 말했다.



 “신 특보가 사전에 검토를 했는데, 검토 내용을 보고해 보시죠.”



 신 특보는 긴급조치 10호 안 법률 검토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10분가량 설명이 이어졌다. “긴급조치 10호를 해선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김 부장으로부터 사전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 10호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신 특보에게 법률 검토를 시킨 후 부결시키는 모양새를 취했는지도 모른다. 회의는 20~30분 만에 끝났다. 김 부장이 참석한 이날 수뇌회의는 더 이상 긴급조치 10호는 안 된다는 결론을 확인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당시 김 부장의 교체는 시간문제란 소문이 대세였다. 언론에서도 얘기가 오르내렸다. 중정부장은 대통령 다음의 제2 권력자 자리다. 중정부장이란 자리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인사 조치가 권력 유지의 ‘ABC’였을 텐데…. 박 대통령은 상당히 오랫동안 제2 권력자의 인사 교체를 불확실한 상황에 뒀고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중정부장 교체보다 중정부장에 의한 10·26 사태가 먼저 왔다. 내가 느낀 10·26 전야(前夜)의 수수께끼다.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한 일은 더 있었다. 1979년 10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유정회(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 추천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모여 만든 정당에 준하는 조직) 연회가 열렸다. 유정회 국회의원이 모여 10월 유신을 기념하는 연례 행사였다.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시기다. 부마 민주항쟁이었다. 청와대 수석들은 10월 유신 연회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연회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유정회 의원 몇몇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덕담을 했다. 연회다 보니 국악과 한국 가요가 흘렀다.



 유신을 반대하는 시위가 부산과 마산에서 번지고 있는데 청와대 영빈관에선 유신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속으로 씁쓸하게 되뇌었다. 9일 후의 일은 꿈에도 모른 채.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사건] 긴급조치 9호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 53조는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을 근거로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발동한 9번째 긴급조치를 말한다. 집회와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유사시 군 병력 출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79년 10·26 사태 1년 후인 80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지난 3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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