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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이라서 … 상처가 더 깊게 파였다

중앙일보 2013.05.06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엄청난 비극이 있었다. 이현수의 장편소설 『나흘』은 그런 사실조차 몰랐던 작가 자신의 반성문이자 고향 땅에 대한 보고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가 명함을 건넸다. 이름과 전화번호, e-메일이 적힌 별다를 것 없는 명함이었다. 소설가가 명함이라…. 기자의 의아한 표정을 본 그가 말했다. 소설을 쓰면서 여러 가지 취재가 필요해 명함을 만들었노라고.

장편 『나흘』 펴낸 이현수 작가



 1950년 7월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을 다룬 장편 『나흘』(문학동네)의 작가 이현수(54)의 이야기다. 그의 고향은 노근리 사건이 벌어진 충북 영동군 황간면이다. 그가 자란 집에서는 당시 사건 현장인 쌍굴이 환히 내다보였다. 그렇지만 미군에 의한 양민 희생이란 역사적 사건은 까맣게 몰랐다. 99년 미국 AP통신과 각종 언론의 보도가 나올 때까지는.



 이씨는 부끄러웠다.



 “어른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죠. 내가 모르는 비밀이 얼마나 많을까 혼란에 휩싸였어요. 『신 기생뎐』 등을 쓸 때 전북 군산에서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고 취재했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구나 싶었죠.”



 그래서 작심했다. 고향의 과거를 직시해보자고…. 소설 속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PD 김진경이 그랬듯, 그도 고향의 역사 앞에 선 것이다. 그리고 탄탄한 역사소설을 빚어냈다.



 물론 창작은 쉽지 않았다. 특히 고향 어르신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춰내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도 할 수 있는 노근리 사건만 정면으로 다루는 건 상처만 헤집는 듯했다. 서로 다른 성(姓)을 가진 양자의 ‘양세계보’로 이어지는 조선조 내시가의 이야기를 또 다른 축으로 끌어들인 건 그런 연유에서다.



 “처음에는 진경의 캐릭터를 동학 대접주 조재벽 가문의 증손녀로 했는데 소설이 너무 무 거워져서 방향을 바꿨어요. 내시가 이야기로 바꾸니 전체의 톤이 부드러워졌어요.”



 주인공 진경까지 5대에 걸친 내시 집안의 삶이 들어오면서 소설이 다루는 시간대는 구한말로 확장됐다. 쌍굴에서 일어난 나흘간의 학살, 피해자와 방관자로 비밀의 공모에 가담한 마을 주민들의 침묵이 음험한 분위기를 드리운다. 진경의 할아버지 김태혁과 그의 친구 박기훈, 그들의 연인 인영의 연애사까지 뒤엉키며 소설은 한층 깊어진다.



 작가의 눈에 비친 노근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우리에 대한 은유다. “미군의 총에 사람들이 죽었는데 양민들은 원망할 데가 없었죠. 우리를 도와주러 온 미군이니까요. 나라를 지킬 힘이 없어서 끊임없이 외세를 끌어들여야 했던 한국 사회의 자화상 같아요.”



 그를 더욱 아프게 한 건 한국 정부가 이들 양민에게 먼저 등을 돌린 것이다. 대구를 지키기 위해서 영동을 버렸고, 피아를 구분할 수 없었던 미군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영동은 충청·경상·전라 3도가 만나는 곳이에요. 역사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면 무사하지 못한 곳이기도 하죠. 이곳 사람들은 언제나 도망갈 준비가 돼 있어요. 소설 속에서 여기 사람들이 ‘자빠질 듯 걷는다’고 묘사한 것도 그래서예요.”



 주인공 진경을 사생아로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버지도, 기댈 곳도 없이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털어놓지도 못하는 노근리 사람들이 마치 사생아 같다는 것이다.



 5년여 쩔쩔매며 작품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 빚을 갚은 듯 홀가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모든 걸 너무 빨리 잊어요. 잊을 것도 잊고, 잊지 않을 것도 잊죠.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됐지만 노근리 사건 같은 일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현수=1959년 충북 영동 출생. 9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무영문학상과 한무숙문학상 수상. 소설집 『토란』 『장미나무 식기장』,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 『신 기생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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