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극장의 추억

중앙선데이 2013.05.04 00:39 321호 30면 지면보기
영화는 꿈을 닮았다. 어쩌면 영화는 우리가 집단으로 꾸는 꿈인지 모른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광고와 예고편이 상영되는 중간에 서서히 불이 꺼질 때, 그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그것은 마치 졸음이 몰려와 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순간의 나른함과 몽롱함 같다. 현실이 잠들고 꿈이 깨어나는, 현재가 페이드아웃 되고 과거가 페이드인 되는 순간의.

처음으로 영화관에 간 것은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영화는 제임스 딘이 나오는 ‘에덴의 동쪽’.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친척 누나들, 동네 처녀들을 따라가 본 것이리라. 어쩌다 내가 거기에 끼여 따라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극장은 크고 웅장했다. 아마 남포동에 있던 부영극장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 같은 조무래기가 보기에 너무 어려웠다. 나는 중간에 잠들었다. 극장 안은 깜깜하고 사람은 많고 산소는 희박하고 영화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그래서 졸다 깨다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본 것들은 실제 모습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기억에 새겨진다. 나는 ‘에덴의 동쪽’을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한다.

중학생 무렵, 시골에 살던 친척 형이 방학 때면 놀러 오곤 했다. 탤런트 오지호를 닮은 그는 모범생에 공부도 꽤 잘해서 부모님들이 좋아했다. 그는 도서관에 간다면서 나를 영화관으로 데려가곤 했다. “극장은 검은 도서관이야”라면서. 주로 갔던 도서관은 범일동에 있던 삼일극장, 삼성극장이었다. 두 곳 다 2본 동시상영관이라서 두 편의 영화를 한번에 볼 수 있었다. 대개 액션 영화와 에로 영화의 조합이었는데, 그것은 2본 동시상영관의 공식 같았다. 그는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나는 에로 영화를 더 좋아했다. 그 무렵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여서 야한 장면만 나오면 눈이 크게 떠지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거나 반대로 입안에 가득 침이 범람했다. 우리는 검은 도서관에서 밤이 늦도록 영화를 보고 충혈된 눈으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부모님의 흐뭇한 걱정을 들으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방학이 되어도 그 친척 형은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더 열심히 다녔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아래에는 대명극장이 있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도서관에 들러 영화를 보곤 했다. 극장의 시설은 낡고 조악했지만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실비아 크리스털만 나오면. 내가 그 영화관을 좋아한 것 중 하나는 손으로 직접 그린 간판이었다. 그림도 예술이었지만 영화제목이 실로 창의적이었다. 나 같은 학생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한 데에는 영화도 영화지만 극장의 간판 보는 재미도 한몫했으리라. 기억에 남는 간판 가운데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맛나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어디서 무엇이 되든 꼭 맛난 사람이 될 거라고. 물론 지금의 나는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맹탕이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간판은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의 간판이다. 원래는 ‘맹룡과강’이라는 제목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극장의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맹룡과 강’.

지난 밤 나는 친척 형과 2본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꿈을 꾸었다. 제임스 딘과 실비아 크리스털과 이소룡이 나오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