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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자 연구 인력, 일본 80명인데 한국 3명뿐

중앙선데이 2013.05.04 23:38 321호 6면 지면보기
국립수산과학원 박은정 박사가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에서 배양하는 토종김 종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내 유일의 해조류 종자은행인 이곳에서는 163종의 계통주를 육성해 배양한다.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2일 오후 전라남도 목포시의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 3층의 한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 쪽으로 13.2㎡(약 4평) 남짓한 방 4개가 나란히 보인다.

막오른 한·중·일 해조류 종자전쟁 … 38세 박은정 연구원이 바빠진 이유

4개의 방문에는 모두 ‘제한구역’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 측은 “김과 미역 등 각종 해조류를 배양하는 배양실은 연구시설 내 핵심 자산이라 보안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배양실 입구에 들어서자 천장에 달려 있는 에어 샤워가 차가운 바람을 쏟아낸다. 방문객의 몸에 혹시라도 묻어 있을 수 있는 식물의 포자와 먼지 등을 털어내기 위해서다. 에어 샤워를 지나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서니 3단으로 만들어진 철제 테이블에 삼각과 원형 플라스크 수백 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플라스크의 크기와 형태는 다양했다. 플라스크 안에는 공기 주입 호스가 달려 있다.

플라스크 내부에는 검붉은 곰팡이와 비슷하게 생긴 김의 사상체(발아 씨앗 뭉치)가 배양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박은정(38) 박사는 “김과 미역 배양실이 따로따로 운영된다”며 “수백 개의 플라스크에는 생육 단계별품종별로 다른 해조류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유일의 해조류 종자(種子)은행이다. 종자은행 내부는 소규모 반도체 공장을 연상케 했다.

종자은행에서는 총 163종(김 121종, 미역 21종, 기타 21종)의 계통주가 자라난다. 계통주는 종자 뿌리는 같지만 키우는 지역마다 다를 때 세분화한 경우다. 같은 참김이라도 서식 지역에 따라 특성이 달라지는 만큼 여러 종의 계통주를 따로 보관해야 한다.

해조류 종자, 왕조실록처럼 세 군데 보관
각각의 계통주는 동일한 것이라도 세 군데로 나눠 보관하는 게 원칙이다. 계통주를 배양해 이를 어민에게 보급해 양식해야 하는 만큼 화재나 지진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조선 최고의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서울 춘추관사고(史庫)를 비롯해 강화도와 태백산 등 다섯 곳에 따로 보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선왕조실록처럼 나눠서 보관할 만큼 해조류 종자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 커진다.

사실 국내 해조류 생산을 통해 얻는 부가가치는 전자·자동차 같은 거대 수출 산업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절대 규모는 작다. 최근엔 그 사용범위가 점점 확대된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가 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해조류를 활용한 산업 규모는 10조 달러에 근접한 것으로 수산업계는 분석한다. 단순히 김이나 미역처럼 직접 먹는 식용이 전부가 아니다. 해조류를 바탕으로 한 의약품이나 바이오소재, 더 나아가 수질환경 정화를 위한 생물 여과제 등으로 적용범위가 꾸준히 넓어진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해조류의 영어 명칭도 조금씩 달라진다. 과거 서양에선 해조류를 ‘sea weeds(바다 잡초)’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점차 ‘sea vegetable(바다 채소)’로 바꿔 부른다.

동양에서 주로 먹던 해조류를 서양에서도 식용으로 먹는 양이 증가한다.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인정된 덕분이다. 실제 미국캐나다 같은 북미 지역에서는 김과 미역의 소비가 크게 늘었다. 김은 초밥 재료뿐 아니라 쿠키와 스낵 같은 가공식품으로 개발된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박주동(40) 박사는 “2010년 1억 달러(약 1100억원)였던 김 수출액이 지난해에는 2억3000만 달러로 배 이상 증가했다”며 “해조류의 상품성이 점점 커지는 만큼 국가적 관심이 필요한 단계”라고 소개했다.

밀과 옥수수를 포함한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2010년 700억 달러였다. 전문가들은 2020년이면 2배 이상 증가한 17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한다. 현재 세계 종자시장은 미국 몬산토와 듀폰, 스위스 신젠타 등 10대 종자기업이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국내 채소 종자 자급률은 50%에 그친다. 고추ㆍ무·양파 같은 내수용 채소는 국내 민간 종자회사들이 글로벌 종자기업과 경쟁을 하지만 다국적 작물인 파프리카·토마토·양배추 등은 일방적으로 밀린다. 국내 농작물 종자 수출입 현황(2011년 기준)에 따르면 수출액은 330억원, 수입액은 1040억원으로 무역적자가 710억원에 달한다.

온난화 따라 고온에 강한 품종도 개발해야
육상의 동식물 종자와 달리 해조류는 이렇다 할 메이저 업체가 없는 가운데 한ㆍ중ㆍ일 3국의 개발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일본은 1980년대 품종개량을 위한 육종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김은 이보다 앞선 1950년대부터 시작해 자연산을 채집해 육종하는 교집 같은 연구를 통해 30여 품종을 개발해 보급 중이다. 우리나라 연구진도 이에 맞서 국산 신품종 우량 종자를 개발하는 일에 주력한다. 최근 생산성을 1.5배 이상 높인 토종 김인 ‘해풍 1호’를 내놓은 게 대표적인 성과다.

해외에 줘야 하는 로열티가 아니어도 해조류 종자 연구에 집중적인 투자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고온에 강한 해조류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국립수산과학원 측은 경쟁력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이를 수출해 수년 내 해조류 로열티 수입을 거두는 단계까지 기대한다.

현실성 없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목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한국의 우수한 양식 기술이다. 박은정 박사는 “밀옥수수 같은 육상 작물이 종자 주권 경쟁에서 뒤진 것은 재배 기술이 뒷받침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보다 해조류 종자 경쟁력에 앞선 일본의 저력은 육종에 필요한 기초 양식 실력이 탄탄한 데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뛰어난 양식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종자 개발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해조류 신품종 개발과 육성을 위한 과제는 또 있다. 최근 민간기업과 국립수산과학원 같은 국립 연구기관의 공동연구가 조금씩 진행 중이긴 하지만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연구소, 수산기술사업소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 산·학·연 연계시스템 구축은 여전히 미진하다. 박은정 박사는 “육상 식물의 종자 개발 단계를 4단계로 본다면 해조류 종자 개발은 이제 2단계 정도로 막 진입한 단계”라며 “농산물 위주의 국립종자원이나 산림 전문인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 턱없이 못 미치는 해조류 연구 인력 보강이 이뤄져야 종자 주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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