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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국보 1호 숭례문, 615년 전 모습 되살렸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3.05.04 13:23
나는 ‘국보 1호’ 숭례문의 ‘현판(懸板)’이다.



5년 전 화마(火魔)에서 살아남았다.



바닥에 떨어져 구르고 깨어지며, 610년을 함께 버텨왔던 내 몸이 불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조선땅을 덮쳤던 숱한 재난과 전쟁에도 서울의 중심을 굳건히 지켜왔던 우리다.



숭례문이 무참히 타 들어가던 5년3개월 전의 악몽,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



드디어 복구작업이 끝났다. 나는 현재 흰 천에 가려졌다 서울의 풍경을 다시 만났다.



4일 오후 2시 열린 ‘숭례문 복구 기념식’에서다.



그간 많은 이가 숭례문 앞을 지나며 나를 올려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를 씻어줄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이렇게 달라졌다=되살아난 숭례문은 많은 이에게 조금 낯설 수 있다. 화재 전에 봤던 모습과는 제법 다르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태조 7년(1398년) 탄생했지만, 세종 30년(1448년), 성종 10년(1479년)에 큰 수술을 거쳤다. 6·25전쟁 당시 총탄에 훼손돼 60년대 초반 다시 해체수리 과정을 경험해야 했다.



 이번 복구는 조선 초 창건 당시의 원형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276억7000만원의 예산이 들었고, 연인원 3만5000여 명이 참여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문화재 복원이다. 쓰인 나무만 25t 트럭 28대분, 돌은 15t 트럭 236대 분량이다. 사료 등을 참고해 그간 중건(重建) 과정에서 잘못 변형된 부분을 적극 바로잡았다. 60년대 공사에서 짧아진 용마루의 길이는 늘어났고, 1층 추녀마루의 머리 장식 잡상(雜像·어처구니)도 조선 후기 사진 자료에 따라 8개에서 7개로 줄어들었다. 민망할 만큼 알록달록했던 옷(단청) 대신, 원래 입고 있던 차분한 색감의 옷으로 다시 갈아입게 됐다.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에 서럽게 잘려 나갔던 나의 양팔, 즉 석벽이 돌아와 반갑다. 한양을 둘러싸고 위용을 자랑하던 성곽이 무참히 부서지던 순간의 굴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동쪽으로는 53m, 서쪽으로는 16m밖에 되살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 옛날 활기가 넘치던 도성 풍경을 상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통은 진화한다=이제 와 고백하지만, 5년 전 숭례문을 지켜내지 못한 당신들이 야속했다. 하지만 이제 수고했다고 치켜세울 부분도 있다. 그동안 망각됐던 전통 건축기법을 되살려낸 장인들의 노고에 마음이 꽉 차 올랐다. 공장에서 찍어낸 품격 없는 기와 대신 가마에서 정성 들여 구운 기와를 올리느라 고생도 많았을 것이다. 가마는 조선시대의 구조를 되살리되, 그 옛날의 흙 대신 내열벽돌을 사용하는 등 현대적 기술을 가미했다. 이렇게 복원된 전통 기와는 약간 거칠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내구성에서도 공장기와에 버금간다. 전통과 새로운 기술이 결합된 본보기로 내세울 수 있다.



 또 화학안료 대신 천연안료를 사용한 단청으로 몸을 감싸게 돼 한결 편안하다. 안료 제작기술이 사라져 이번에는 대부분 일본산(産)을 썼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안료를 사용할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석벽에 쌓인 돌은 장인들이 조선시대 사용한 정과 망치를 이용해 하나하나 쪼고 다듬었다. 숭례문 근처 석벽에 남아 있던 낡은 돌과 포천의 석산에서 캐 온 새 돌이 함께한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이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일 것이다.



 나도 수술을 받았다. 부서지고 갈라진 부분을 접합하고, 1800년대 탁본을 바탕으로 숭(崇)과 례(禮)자의 삐침과 연결 부분 등을 바로잡았다. 여기서 퀴즈 하나. 내가 왜 숭례문 중앙에 세로로 걸려 있는지 알고 계시는지. 그렇다. 관악산의 화기(火氣)에 맞서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부끄럽게도 나의 소임은 5년 전 실패했다. 다시는 이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이영희 기자



숭례문 되살린 장인들의 말말말



▶ 신응수(71) 대목장=‘천년을 버틸 수 있는 숭례문’을 목표로 작업했다. 이번 복원이 국민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 홍창원(59) 단청장=조선 초기의 단청을 되살렸다.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사라졌던 전통 안료과 채색 기법을 복원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 이근복(64) 번와장=2만3369장의 기와를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올렸다. 새 숭례문 기와의 아름다운 색채와 곡선이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 이의상(72) 석장=옛날 석수들이 사용하던 정과 망치를 구해 전통 방식으로 돌을 쪼고 다듬었다. 석장 인생 55년에 가장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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