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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사사에 대사님, 형용사가 틀렸다니까요"

중앙일보 2013.05.04 00:5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 총국장
“일본 정부는 깊은 후회와 진정한(heartfelt) 사과의 뜻을 이미 국내외에 밝혔고,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에 대한 진실한(sincere) 애도를 표명했다.”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가 1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고문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준엄하게 꾸짖은 이 신문의 사설에 대한 반론이다.



 사사에의 지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일본 정부는 기회 있을 때(정확히는 필요할 때)마다 사과를 해왔다. 맞는 말이다. 내 기억으론 최근 10년간 재임한 8명의 총리 모두 이런저런 자리에서 사과를 표명했다. 국가를 상징하는 일왕(일본에선 천황) 또한 ‘통석의 염’을 표한 바 있다. 인정한다. 그래서인지 친한 일본 기자들은 나에게 술 한잔 들어가면 “도대체 얼마나 더 사과하면 돼?”라고 따지곤 한다. 그때마다 농반 진반으로 응수하는 말이 있다. “잘할 때까지!”



 사사에 기고문의 결정적인 오기(誤記)는 ‘진정한’ ‘진실한’이란 형용사다. 그도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시절이던 2007년 3월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국회에 나와 “위안부에 ‘광의의 강제성’은 있었지만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언은 없었다”는 궤변을 토했다. 한국의 반발에 아랑곳없던 그는 미국이 발끈하자 망언 21일 만에 “난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승계하는 사람” “총리로서 사과한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주 아베의 ‘침략 불인정’ 발언을 둘러싼 소동도 6년 전과 판박이다. 한국 반발은 무시하다 미국이 한 소리 하자 돌연 꼬리를 내렸다. ‘진정한’ ‘진실한’이란 형용사는 그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개인적으론 사사에의 기고문 옆 독자투고에 더 눈길이 갔다. 유키 헤닌저라는 재미 일본인의 글이었다. 그는 “우리는 일본이 원폭 희생자라고만 배웠지 전쟁 가해자란 걸 배우지 못했다. 일본 언론이나 일본인들은 이런 이슈에 대해 반성하길 꺼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동종업계 동료를 탓하는 것 같아 뭐하지만 내 생각도 유키와 똑같다. 일본 언론의 견제와 비판 기능은 멈춰선 느낌이다.



 군국주의 노선을 기획하고 조종하는 우익사령탑 ‘일본회의’가 활개를 치지만 그에 대한 심층기사를 본 적이 없다. 세계적 권위의 지일파인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아베의 역사관을 지적해도 자신들이 저질렀던 침략의 역사적 경위, 국제사회가 문제삼는 포인트를 깊이 있게 파헤친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 하지만 그게 일본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일본회의 소속 800만 우익 회원들만이 일본인은 아니다. 난 유키와 같은 양심적인 일본인이 다수라 믿는다. 그들이 제대로 된 실상을 알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한국도 일본도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진실한’이란 형용사에 한국 국민, 일본 국민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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