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농구 동부 신임 감독 이충희-최란 부부

중앙일보 2013.05.04 00:47 종합 20면 지면보기
이충희 동부 감독과 배우 최란은 결혼 30년차 ‘잉꼬 커플’이다. 최란은 1984년 결혼과 함께 여주인공은 포기한 뒤 ‘내조의 여왕’으로 살았다. 이 감독은 6년 만에 프로농구 감독에 복귀하며 아내의 내조에 보답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최란(53)이 이충희(54) 신임 동부 감독에게 말한다. “감독님, 이제 작전 연구하셔야죠.”

"남편 잘렸을 때, 그 농구단 내가 사겠다 큰소리쳤죠"
스물다섯·스물네 살 때 열애설 터져
"당시 결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아"



 이 감독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부인 최란을 바라보며 말한다. “느낌이 좋아. 잘될 거야.”



 결혼 30년차 이충희·최란 부부는 소문난 ‘잉꼬 커플’이다.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도중 이 감독이 쓱 손목을 들어올리자 최란은 자연스레 이 감독의 소매를 접어올린다. “소매 접는 게 더 예쁘겠다.” 이 감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TV 속 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한없이 부드러운 아내다. ‘내조의 여왕’이 따로 없다. 이 감독은 “아내의 화끈한 성격 때문에 결혼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아내 말을 따른다.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잘 지내는 비결이다”며 웃었다.



 이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은 ‘슛도사’다. 슛을 던지기만 하면 림에 꽂혔다. 1980년 실업팀 현대전자에 입단해 득점왕 6회, 최우수선수(MVP) 3회 등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최란도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배우였다. 1979년 미스 춘향대회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귀엽고 깜찍한 외모로 차세대 주연감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최란은 화려한 여주인공 대신 이 감독을 선택했다. 이 감독이 좌절할 때마다 등 뒤에서 “우리 남편 잘했어”라고 응원했다. 최란은 “‘배우 최란’이 아니라 ‘이충희 부인 최란’으로 30년을 살아왔다. 오리온스 감독에서 물러난 뒤 대학원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박사학위까지 따게 했다. 이제 감독 기회까지 얻었으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했다.



 이 감독은 지난달 29일 공석이던 동부 감독에 취임했다. 2007년 오리온스 감독 이후 6년 만이다. 이 감독은 동부 감독에 선임된 뒤 최란을 꼭 껴안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들 부부의 뜨거운 ‘러브 스토리’를 들어봤다.



"남편을 하늘처럼 모시고 산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문화예술협회 사무실. 최란이 이사장으로 있는 기부단체다. 부부는 편안한 복장으로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아원에 보낼 어린이날 선물을 논의 중이었다.



이충희·최란 부부는 기부단체인 서울문화예술협회를 설립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부부가 고아원에 보낼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하며 밝게 웃고 있다.
 - 앞으로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긴 힘들 것 같다.



 이=그동안 농구 해설위원을 하며 기부단체를 아내와 함께 운영했다. 그런데 당장 6일부터 동부 선수단과 훈련을 시작한다. 아마 어린이날 행사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최=이제 떨어져 지낸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아들 장가보내는 느낌이다. 오래 떨어져 있어야 남편이 감독직에서 잘리지 않고 잘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이제 나보다 농구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말은 모질게 해도 속은 그렇지 않다. 최란은 늘 이 감독 편에서 응원을 한다. 이 감독은 2007년 오리온스를 맡은 뒤 반년 만에 물러날 때 최란이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당시 오리온스는 김승현 등 주축 선수 부상과 재정 악화로 팀 성적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당시 무슨 말을 해줬나.



 최=남편보다 내가 더 화가 나더라. 시즌 시작 한 달 만에 성적이 부진하다고 질책을 받았다. 신임 감독에겐 시간과 지원이 필요한데 무작정 성적만 요구하니 답답했다. 그래서 ‘내가 농구단 사버릴게. 얼만데. 걱정하지 마’라고 큰소리쳤다.



 이=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힘이 되더라. 감동을 받았다. 아내는 늘 이런 식이다. 화끈하고 저돌적이다.



 - 내조의 여왕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최=TV 속 내 이미지는 억척스럽고 강하다. 그런데 집에서는 완전 다르다. 남편을 하늘처럼 모시고 산다(웃음). 선수 시절엔 실력이 줄까 봐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남편이 부진하면 내 책임이 되는 게 부담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편 내조하는 영상이 나갔는데 아줌마들이 욕을 하더라. 내가 강한 역할을 자주 맡다 보니 가식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이=내조의 여왕, 인정한다. 집에서는 굉장히 부드럽다. 나를 늘 배려하는 게 느껴진다. 내가 잡혀 사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서로 대등하게 지낸다. 음식도 참 잘한다. 밖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으면 집에 와서 똑같이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농구 감독 부인으론 제격이다. 이제 나는 감독만 잘하면 된다.



 - 봉사도 부인 권유로 시작했다던데.



 이=10년 전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시작하더라. 농구만 해와 세상을 넓게 못 보는 게 사실인데 부인이 많이 도와줬다. 그런데 동부로 가면 봉사할 시간이 많이 안 날 것 같다.



 최=남편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동부 연고지인 강원도 원주에도 고아원이 많다. 시간 내서 근처 고아원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혼자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다가 규모가 커져 2010년 서울문화예술협회까지 만들게 됐다. 남편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



느긋한 이충희, 성격 급한 최란



 이 감독과 최란은 1984년 6월 결혼했다. 각각 25세와 24세. 농구선수와 배우로 꽃을 피울 시기다. 당시엔 운동선수와 배우는 결혼을 빨리 하는 게 금기시되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들은 왜 결혼을 결심했을까.



 - 비교적 일찍 결혼했다.



 이=1983년 ‘선데이서울’에 열애설 기사가 터졌다. 당황했다.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결혼 발표를 했다. 열애설 기사에 기자회견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최=사귀는 걸 들키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웃음). 당시엔 열애설이 나면 꼭 결혼을 해야만 했다. 요즘이야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익숙하지만 그때는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 둘 다 전성기였다.



 최=내 나이 24세 때 결혼했다. 배우로 한창 꽃을 피울 시기다. 여주인공도 많이 했다. 그런데 여배우 이미지 다 포기하고 ‘이충희 부인’으로 직업을 바꿨다.



 이=농구선수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빨리 결혼하면 마음이 안정돼 운동도 잘한다’라지만 그때는 대부분 은퇴 후에 결혼을 했다. 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결혼 직후인 1985년 현대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 에 뽑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동선수가 일찍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결혼 초기 ‘뻥튀기’ 내조를 했다고 들었다.



 최=슛 연습을 한다고 내 입 안에 뻥튀기를 던져 넣더라. 처음에는 재밌다가 계속 하다 보니 화가 났다. 그래도 어쩌겠나. 슛을 잘 넣을 수 있다면 참아야지. 나중엔 양말을 말아서 빨래통에 던졌다. 심지어 코 푼 휴지를 휴지통에 던지더라. 이젠 다 추억이다.



 최란은 결혼 후 여주인공 욕심은 버렸다. 결혼 사실이 퍼지다 보니 ‘비련의 여주인공’은 맡기 어려웠다. 이때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줌마인 걸 인정하고 모든 배역을 불만 없이 다양하게 소화하기로. “19세라도 결혼하면 아줌마다. 당당하게 연기하니 마음이 편하더라. 당시 여주인공에 욕심을 냈더라면 나의 배우 인생은 거기서 멈췄을 거다.”



 - 성격이 정반대다.



 이=난 아주 많이 느긋하다(웃음). ‘고’와 ‘스톱’을 번갈아 가면서 인생을 살아왔다. 농구 빼고는 욕심도 많지 않다.



 최=난 다르다. 무조건 ‘고’다. 성격이 급해 한번 생각한 일은 곧바로 처리해야 한다. 남편 박사학위도 내가 억지로 시킨 거다.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대다가 나한테 혼났다. 남자가 늙으면 어린애처럼 된다고 하지 않나. 남편이 딱 그렇다. 가만 보면 애 같다.



 - 경기장에선 무서운 감독으로 알려졌는데.



 이=경기 당일에만 무섭다. 경기가 끝나면 편하게 지낸다. 농담도 잘 건네는 편이다.



 최=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웃긴 남자다. 얼마 전 윗집에 배우 하지원씨가 이사를 왔다. 먹을 걸 갖다 주며 인사하고 갔는데 남편이 ‘요즘 파출부 아줌마는 되게 젊네’라고 하더라. 눈이 나빠 누군지 못 알아본 것이다. 가끔 보면 엉뚱한 면이 있다.



 - 딸들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던데.



 이=오해다. 부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내가 딸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했다더라. 나도 기사를 통해서 봤다. 미국 유학 당시 번호를 몰랐을 뿐이지 한국 번호는 안다.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요즘은 카카오톡도 주고받는다. 이 정도면 좋은 아빠 아니냐.



 최=지난해까지 딸들이 미국에 있었는데 늘 번호를 몰라 전화를 걸어달라더라. 보고 싶다고 몰래 울면서도 절대 전화는 안 한다.



 - 눈물도 흘리나.



 이=사실이다. 딸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이런 얘길 예능에서 해야 한다. 앞뒤 쏙 빼고 말하니 내가 마치 딸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알려졌다.



 최=요즘 남편이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져 큰일이다. 무슨 말만 하면 운다. 반면에 나는 눈물도 없어지고 더 강해지고 있다. 집안 망치질은 내가 다 한다.



 부부는 끝까지 티격태격했다. 최란이 “남편은 무뚝뚝한 나쁜 남자 스타일”이라고 하자 이 감독은 “내가 어디가 어때서”라고 받아쳤다. 옛날얘기를 하다 일치하는 내용이 나오면 손뼉을 마주쳤다. 마치 30년지기 부부가 아닌 여고 동창생이나 되는 것처럼.



김환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