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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이성의 전사' 히친스, 인간의 가치를 되묻다

중앙일보 2013.05.04 00:21 종합 25면 지면보기
우상파괴자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종교·정치·국가 등 모든 것을 비판했다. 2009년 3월 열린 ‘신은 위대한가’ 논쟁에 참여한 히친스(오른쪽). [사진 알마]


논쟁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알마

626쪽, 2만5000원




‘수사법(레토릭)의 최고 권투선수.’ 저자 히친스(1949~2011)의 현란한 글 솜씨를 두고 한 미국 잡지가 그렇게 묘사했지만, 실은 종합격투기 선수가 맞다. 링의 위 아래를 안 가리는 저돌성, 자신만의 룰에 대한 고집 때문이다. 그걸 보여준 게 6년 전 큰 논쟁거리였던 『신은 위대하지 않다』였다.



 무신론자 논객답게 신과 종교에 관한 서양지성사의 불편한 진실을 송두리째 드러냈는데, 왜 그가 “신을 포함한 모든 폭군에 대항하는 전사(戰士)”(『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의 말)인가를 새삼 각인시켜줬다. 그때가 전성기였다. 당시 2005년 그는 세계 100대 지식인 선정 결과 5위에 올랐다.



 참고로 1위가 노엄 촘스키, 2위 움베르토 에코, 3위 리처드 도킨스인데, 이번 신간은 저널리스트 겸 정치학자인 히친스의 진면목을 만나는 종합선물세트다. 『논쟁(원제 Arguably)』이란 제목대로 의심스럽거나, 논증할 수 있는(arguable) 모든 것을 피하지 않는 우상파괴주의자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그의 타계 직전 나온 선집의 제5권. 암 선고를 받았던 그가 “이게 내 마지막 글”이라는 생각으로 쓴 것도 포함돼 있어 수록된 서평·칼럼 등 60여 꼭지가 예사롭지 않게 읽힌다. 베트남전·이라크전을 다룬 게 꽤 많고, 링컨·케네디 등을 대상으로 한 역사 청문회도 있다. 장서(藏書)분류법 등 가벼운 글도 있어 잡문(雜文)모음집이지만, 산만하진 않다.



히친스
 “미국은 절대선인가?”“진정한 휴머니즘은 무엇인가?”를 되묻는 일관성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이 책을 감싸는 정신은 “광신(狂信)과 독선은 안 된다”는 메시지다. 원한으로 똘똘 뭉쳐진 9·11테러범이나 자살테러범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좀비다. 그들이 내세우는 순교나 성전 따위의 명분이란 “삶보다 죽음을 더 사랑하는 증오이자 허무주의”태도에 불과하다.



 이 책은 시인 김지하의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를 연상시키는데, 히친스의 경우 특정 이념을 무기로 인간과 사회를 개조하려는 전체주의 마인드에 대한‘노!’의 목소리이다. 아직도 그런 어두운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한 체제가 좀비국가 쿠바와 북한이다.



 책에는 북한에 대한 두 꼭지 글이 있는데, 거대한 강제수용소인 북한 주민들은 증오와 죽음의 종교를 강제로 주입받는다. 더 희한한 게 한국사회 내부의 종북세력이다. 북한체제가 더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시대착오적 무리야말로 막상 평양에선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459쪽)이라는 게 히친스의 단언이다.



 그런 그의 정치철학은 “다원주의를 덕목으로 하는 세력이 얼핏 온건파로 보일지 몰라도 실은 더 뿌리 깊은 혁명가들이다”라는 명제에 담겨있다. 실은 히친스는 진보에서 보수로 개종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트로츠키주의자였다. 1985년 한국의 야당지도자 김대중이 미국에서 돌아올 때 한국 귀국을 함께 했던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그는 만년에 돌아섰다.



 그건 타협이 아닌 지적 성숙의 결과인데, 확실히 히친스는 미국 보수세력을 비판하는 영화‘화씨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 같은 미국판 강남좌파와 구분된다. 노엄 촘스키 류의 완고한 삐딱이 지식인과도 구분된다. 책 곳곳에서 좌파의 독선을 매섭게 몰아붙이는 것도 그런 배경이다.



 확실히 그는 『동물농장』 『1984』의 소설가 조지 오웰과 완벽한 지적 쌍생아이며, 18세기 계몽사상가 볼테르와도 이미지가 겹쳐진다. “당신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할 당신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는 볼테르의 관용(톨레랑스) 정신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절대선인가를 따지면서도, 21세기 미국이 여전히 지구촌 민주주의의 모델이라고 확인하는 대긍정도 그의 그릇을 보여준다. 자기 문장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문장이 사진보다 강력할 수 있다는 게 내 믿음이다”(434쪽). 이미지 시대 글의 화력시범을 보여주는 이 책은 양면성이 있다.



 유행가의 가사대로 히친스 문장의 팬들에게는 “아주 그냥 죽여주는” 문장이지만, 다른 이에겐 숫제 고문일 수 있다. 내용과 문장 모두 그만큼 편차가 큰 『논쟁』은 너무 너무 현란한 복문(複文)으로 가득하다.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은 외면하는 게 좋을 듯싶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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