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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우뚝 솟은 롯폰기힐스, 현대의 바벨탑 아닌지 …

중앙일보 2013.05.04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도쿄의 북촌이라 할 인기 산책 코스 ‘야네센’을 느릿느릿 걷는 강상중 교수, 그는 “이방인의 힘으로 동네의 매력이 더 살아날 것” 이라 했다. [사진 사계절출판사]


도쿄 산책자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사계절

248쪽, 1만3000원




재일 한국인 2세인 강상중(63)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는 타고난 이방인이다. 낳아준 부모 한국과 길러준 부모 일본 사이에서 “양쪽이 싸우면 아이들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며 양국에 거리의 촉을 세우며 산다. 그가 쓴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두 나라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준 까닭은 아마도 일본 근대와 식민지 지배 역사를 이방인으로서 연구하며 고민한 힘 덕이었을 것이다.



  강 교수가 일본 여성잡지 ‘바일라’에 연재했던 도쿄 이야기를 묶어 2011년 펴낸 『도쿄 산책자』의 원제는 ‘TOKYO STRANGER’다. 스트레인저, 즉 이방인의 눈으로 본 도쿄다. 도쿄를 무대로 ‘해내고 말겠다’며 여기저기를 배회하던 촌놈이었다고 자신의 청년기를 돌아보는 책 말미의 대담 내용이 인상적이다. 진짜 자기를 찾아 정체성을 고민해온 방황기가 도시 곳곳을 헤매는 여정에도 배어있다.



  ‘도시에 우뚝 솟은 바벨탑’ 롯폰기힐스나 ‘어딘지 쓸쓸한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처럼 한국인 관광객에게 낯익은 곳도 많지만 ‘근대화의 환영을 찾아서’란 제목이 붙은 오가사와라 백작 저택 같이 낯선 명소도 있다.



 비일상적 공간, 포스트모던 그 이후, 글로벌화, 도쿄 문화, 원자화하는 개인, 도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가의 여섯 개 장으로 나눠 스물아홉 군데를 자박자박 안내하는 그의 발걸음은 때로 가볍고 때로 무겁다.



 강 교수는 도쿄 명물 고양이 카페에서 쪼그라든 현대인을 성찰한다. “(고도경제 성장시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반추하며) 사람들이 멈춰 서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수축의 시대 반성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국회의사당 앞에 선 그는 “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는 아이러니하게도 경박해 보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 들려오는 것은 국민 부재의 폭주뿐입니다”라고 토로한다.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어본 소리 같다. 도쿄를 서울로 바꿔놓아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강 교수는 한국어판을 내며 쓴 머리말에서 “어느새 도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도쿄로 오갈 때마다 국경을 넘는다는 감각은 사라지고 평평한 감각만이 남게 되었다”고 했다.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갈파했듯 “도시는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욕망·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인 도시는 그 형식·질서·차이들을 서로 교환하며 그런 무형의 먼지로 뒤덮인 채 닮아간다. 강 교수에게 한때 “피부가 벗겨져 살과 신경이 그대로 노출된” 듯 보였던 서울 거리의 광경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어딘가 서먹서먹하고 청결한 메트로폴리탄으로 변해” 버렸다.



  이 책에 담긴 도쿄는 3·11 대지진 이전 ‘세계의 TOKYO’다. 이제 탐욕과 미망에서 깨어난 도쿄를 향해 강교수는 비관도 낙관도 없이 “다만 오만한 도쿄도, 위축된 도쿄도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이방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눈짓하며 살짝 끌어안는 듯한 도쿄”를 자신이 바라는 도쿄의 미래라고 말한다. 서울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라는 말로도 들린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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