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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말할 수 없는 남과 여 … 오직 '짝의 한 수'로 소통

중앙일보 2013.05.03 00:43 종합 26면 지면보기
페어바둑은 ‘소통’이 최고다. 사진은 국내 유일 페어 대회인 제3기 SG배에서 맞붙은 이세돌-김은선 조(오른쪽)와 박정환-김여원(A) 조. 이세돌 조가 승리했다. [사진 한국기원]


페어바둑은 남녀가 한 팀을 이뤄 대국한다. 일단 대국이 시작되면 전략을 상의할 수 없다. 순서도 바꿀 수 없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페어바둑 결승전에서 한국의 박정환-이슬아 조가 중국의 셰허-송용혜 조를 1집반 차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순서를 바꿔 2집의 페널티를 받은 송용혜는 국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언의 이중주 '페어바둑'
수에 담긴 뜻 읽으며 작전구상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 승리



 페어바둑은 전략에 엇박자가 나면 엉망이 된다. 답답해도 화를 내는 건 금기다. 서로 한 몸처럼 생각하고 한 몸처럼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심전심의 의사소통이 물 흐르듯 이뤄져야 한다. 말은 물론이고 어떤 사인도 주고받을 수 없는데 두 기사는 무엇으로 소통할까. 오직 수(手)로써 소통한다. 수를 통해 “지금은 싸울 때”라고 말하고 수를 통해 “참자. 기다리자”고 말한다.



 얼마 전 시작된 제3기 SG배 페어바둑 32강전에서 이세돌-김은선 조와 박정환-김여원(A) 조가 맞붙었다. 이세돌 9단 같은 파격적이고 개성이 강한 기사와 한 팀을 이룬 여자 기사는 고민이 많아진다. 수읽기를 따라갈 자신이 없어 정신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이세돌 9단도 걱정이다. 평소 스타일대로 두면 파트너가 따라오지 못할 수 있고 평범하게 둔다면 ‘이세돌’의 가치는 약화된다. 그 점에서 비록 아마추어와 한 팀이지만 장기전 스타일의 박정환-김여원 조가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결과는 이세돌 팀의 불계승이었다. 리스크가 큰 아수라의 전투를 택한 것이 이번엔 주효했다.



 국내 유일의 페어대회인 SG배 지난해 우승팀은 사제지간이 짝을 이룬 유창혁-최정 조였다. 유창혁 9단은 랭킹 67위의 시니어 기사로 정상권에선 이미 꽤 멀어졌지만 제자인 17세 최정 3단과 기막힌 호흡을 보여줬다. 남자 최강 이세돌 9단은 여자 최강 박지은 9단과 한 조를 이뤄 막강한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개성이 강한 두 기사는 8강에서 조한승-오정아 조에 져 탈락했다. 페어바둑의 명품이라 할 유창혁-최정 조가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에서 열린 제1회 루양배 한·중·일 바둑페어명인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첫 판에서 일본의 유키 사토시-스즈키 아유미 조를 불계로 꺾었다. 허페이는 삼국지에서 조조와 손권이 치열하게 싸워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명이다. 안후이성 체육국, 허페이시 정부, 루양구 인민정부 등이 후원한 이 대회는 ‘삼국지 유적공원’에서 열렸다. 1일 중국의 창하오-왕천싱 조도 일본을 이기면서 2일엔 한-중 결승전이 벌어졌다. 흥미로운 이 대회는 CC-TV 채널1에서 뉴스로도 보도됐다.



 우승컵은 아쉽게도 창하오-왕천싱 조가 차지했다. 왕천싱은 가장 좋아하는 기사가 이세돌 9단일 정도로 자유분방하지만 노련한 창하오의 배려 속에서 이날은 아주 유연한 호흡을 보여줬다. 페어바둑은 혼자 잘나서는 소용 없고 파트너를 포용해야 한다. 또 지나치게 겸손해도 안 된다. 페어바둑은 마음의 하모니이고 이중주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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