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에 금융안정보고서 제출
11조는 당장 돈 떼일 가능성 높아
연체율, 3년 새 0.2%서 1.1%로
건설업 예상부도확률 9% 넘어
이 통계치는 분석기관인 한은도 놀랄 정도다. 사실 대기업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중소기업들이 어려우니 좀 나눠주라고 대기업을 독려하는 판인데, 잘나가는 줄로만 알았던 한국 대기업들의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민상일 흥국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위험여신이 많다는 것은 언제든 대기업 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빌려간 돈을 못 갚는 것은 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이다. 매출로 이익을 내는 비율인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09년 6.2%에서 2012년 5.2%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은행에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는 연체율이 같은 기간 0.2%에서 1.1%로 뛰어올랐다. 한은 관계자는 “한계상황에서 간신히 버텨오던 대기업들이 손을 드는 경우가 부쩍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은행들이 돌려받지 못했지만 아직 연체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규모까지 감안하면 연체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부동산 경기 침체의 희생양이 된 건설과 금융위기의 후폭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해운·조선의 어려움이 심각하다. 조선의 경우 지난해 수주량이 45% 감소했다. 조선업체 중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빅3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 대다수가 손실을 보고 공장을 돌리고 있다. 해운업계는 더 암울하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조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입었고, 한진해운(-7008억원) ·대한해운(-2503억원)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한은은 이들 업종의 예상부도확률이 건설 9.1%, 해운 8.5%, 조선 5.9%라고 밝혔다. 이 정도의 수치는 “상당히 높은 부도확률”이라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건설업계의 어려움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건설사들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옮겨붙으며 그룹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 문제다. 극동건설 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웅진그룹이 그런 사례다. 보고서는 “부실 가능성이 큰 대기업 그룹 가운데 상당수가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증시에선 계열 건설사를 지원하는 모기업의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건설·해운·조선을 두고 ‘한국 산업계의 못난이 삼형제’로 부르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들 업종만 탈이 난 것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는 전자, 화학 업종 대기업의 요주의이하여신 비율도 각각 6.7%, 4.8%나 된다.
대기업에 빌려준 돈이 부실화하면 은행도 온전할 수 없다. 국내 은행들은 2012년 말 현재 대기업 부실에 대비해 5조원 정도의 대손충당금을 쌓아두고 있다. 한은은 “국내 은행의 대기업 여신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점차 확산되는 모습”이라며 “국내 은행은 손실흡수능력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상렬·최현주 기자
◆고위험여신·잠재위험여신=은행이 빌려 준 돈을 현재 시점에서 떼일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고위험여신이라고 한다. 잠재위험여신은 아직 부실화하지는 않았으나 향후 기업 사정이 나빠지면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