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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시대 와타나베식 돌파구…금리에서 좀 더, 환차익으로 한 번 더

중앙선데이 2013.04.28 01:37 320호 20면 지면보기
#1 금융자산이 15억원가량인 60대 은퇴자 김모씨. 그는 최근 전세를 놓고 받은 2억원을 굴리러 증권사를 찾았다가 월지급식 해외 채권형 펀드에 가입했다. 이미 자산 중 5억원을 국내 채권에 투자했다. 그는 “국내 채권은 금리가 너무 낮고 주식은 믿을 수 없다”며 “다달이 들어오는 채권 수익은 주식형 펀드에 재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채권펀드에 뭉칫돈 몰린다는데

#2 40대 회사원 박모씨는 만기가 돌아온 적금을 찾아 지난달 인기 해외 채권인 ‘우리다시채권’을 3000만원어치 샀다. 3년 전 가입한 적금 금리는 연 5%대. 하지만 적금 만기가 된 목돈을 예금에 넣으려 하자 연리 3%가 넘는 상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한국보다 금리가 높은 신흥국 채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환리스크가 걱정되긴 하지만 돈을 불리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에 해외 채권 투자가 주목받고 있다. 채권 투자는 한때 안정성을 추구하는 거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요즘 인기인 해외 채권 투자는 조금 다르다. 거액 자산가뿐 아니라 돈 굴릴 데가 없는 중산층이 대거 합류했다는 점, 안정성보다 추가 수익을 노려 해외로 투자금이 몰린다는 점이 그렇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해외 채권 시장이 급팽창해 부풀려진 정보만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해외 채권 인기는 펀드 판매 잔고만 봐도 뚜렷하다. 지난해 8월 말, 해외 채권형 펀드의 잔고는 1년여 만에 4조원을 돌파하더니 5개월 만에 두 배 가까운 7조3880억원을 기록했다. 시중 110개 해외 채권의 1년 평균 수익률은 10.3%에 달한다. 2년 평균 수익률(14.8%)이나 3년 수익률(평균 27%)도 좋았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의 김동일 한국채권대표에 따르면 해외 채권형 펀드가 선전한 이유는 투자 지역별로 다르다. 미국 채권의 경우 금리가 내려가면서 채권 평가이익이 올라갔고, 아시아 신흥국 채권은 해당국의 통화 가치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며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직접 해외 채권 사면 비과세 유리
세계경기가 회복 조짐이 있는데도 해외 채권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환율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보통 금리가 오르고 채권 가격이 내린다. 그럼에도 일부 신흥국이 당분간 통화 강세를 보일 거란 기대에 펀드에 가입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펀드에 가입하기 전 ▶어느 통화로 발행된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지 ▶만기는 언제인지 ▶채권의 평균 신용등급은 어떤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동일 대표는 “무조건 ‘작년에 좋았다’는 펀드에 가입할 게 아니라 환율 변동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신흥국뿐 아니라 재정 상태가 괜찮고 경제 성장률이 높은 스웨덴 같은 나라도 통화가치 절상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해외 채권에 직접 투자하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채권형 펀드의 경우 수익 전체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지만 직접 채권을 사면 이자수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낸다. 매매 차익이나 환차익은 비과세다. 최근 일부 증권사가 선보인 ‘우리다시채권’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크게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다시’는 일본어로 ‘매출(賣出)’이란 뜻. 다양한 통화로 발행된 해외 채권을 증권사가 사들여 개인투자자들에게 파는 걸 말한다. 오랜 기간 저금리를 겪은 일본에선 보편화된 투자 방식이다. 일본의 우리다시채권 시장 규모가 우리 돈으로 연 50조원에 달할 정도다.

국내에서 우리다시채권을 처음 선보인 건 대신증권이다. 수출입은행이 터키(리라)와 러시아(루블)ㆍ멕시코(페소)ㆍ남아프리카공화국(랜드)ㆍ호주(호주달러)에서 현지 통화로 발행한 채권을 들여와 2월 소매로 팔기 시작했다.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과 수익률이다. 수출입은행은 국내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 평가를 받는다. 국제신용등급(S&P기준 A+)도 해당 나라의 국채보다 오히려 높다. 탁월한 안정성에 비해 금리도 좋다. 표면금리는 국가별로 연 6.45~8.06%다. 잔존 만기가 2~4년으로 비교적 짧다는 것도 장점.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위험이 커져 금리가 올라간다. 안연희 대신증권 청담지점 금융주치의는 “요즘 VIP 고객들의 최대 화두는 중위험 중수익, 시중 금리보다 1~2% 포인트의 수익을 더 내는 투자를 선호한다”며 “우리다시채권은 시중 채권보다 금리가 조금 더 높으면서 해당국 국채보다 만기가 짧다는 점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대우증권도 이달 초부터 우리다시채권을 내놨다. 산업은행이 발행한 터키 리라화 채권과 수출입은행이 발행한 브라질 헤알화 채권이다. 표면금리가 8%대지만 채권 가격 상승분을 감안하면 실제 세전 수익률은 연 6%대 안팎이다. 잔존 만기는 역시 2~4년으로 짧은 편이다.

거래 비용 감안하면 단기 수익 어려워
우리다시채권 투자의 핵심은 채권 발행국의 환율 전망이다. 일본에서도 엔화가 약세를 보이던 2000년대 중반, 일명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린 환투자 세력이 해외 채권을 적극 활용했다. 채권 발행국의 통화가 원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면 환차익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원화가 더 강세를 보이면 그만큼 손해다. 이번에 출시한 우리다시채권 중에서도 터키 리라화 채권과 멕시코 페소화 채권이 유독 잘 팔리는 건 통화 강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김경환 대신증권 리테일채권부 차장은 “터키 리라화의 경우 변동성이 적은 데다 터키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아질 거란 기대가 커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며 “멕시코 역시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실업률이 줄고 수출이 늘어 페소화가 오를 거란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 채권 직접투자가 늘면서 이를 관리해 주는 증권사 신탁 서비스도 속속 등장한다. 삼성증권의 경우 일정 금액 이상의 해외 채권을 구매한 고객에게 ▶채권 수익을 달마다 쪼개 지급하거나 ▶중간중간 들어오는 채권 이자 수익으로 채권에 재투자해 주는 신탁 서비스를 한다. 일부 채권의 경우엔 환헤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박진수 신탁팀 과장은 “중간에 들어오는 채권 이자를 다시 채권에 재투자하면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상당 부분 커버된다”며 “해당국 통화 강세로 이익이 나면 이를 바로 지급하는 맞춤 관리도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근의 해외 채권 투자 열기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NH농협증권 신동수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금리는 바닥 수준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채권을 싸게 살 기회는 이미 지났다고 본다”며 “해외 채권의 경우 거래 비용을 감안하면 단기 투자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수만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신흥국의 통화 가치가 올라간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원화 가치 역시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흥국 채권 투자에서 환차익을 크게 기대하기란 어렵다”며 “다만 심각한 저금리인 한국에서 신흥국 채권의 금리가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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