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코리아 성형 소동의 전말

중앙선데이 2013.04.28 03:04 320호 30면 지면보기
“미스코리아 후보들은 모두 자매? 쌍둥이?”
“한국 미인들은 성형 중독인가? 포토샵 중독인가? 둘 다인가?”

 며칠 사이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난데없는 ‘뉴스’들의 흐름을 살펴보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과정은 이렇다. 2013년 미스코리아 대구 지역대회가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의 사진이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포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국내에선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24일 이 사진들이 하필이면 일본의 혐한(嫌韓) 사이트 중 하나인 ‘카이카이’에 소개된 게 해프닝의 시작이었다. 외모를 두고 ‘쌍둥이네, 성형이네’ 하는 댓글이 수백 개 붙었다. 그 뒤 하루도 안 돼 같은 사진이 미국의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reddit.com)에 올라갔다. 처음 게시자(ShenTheWise)는 ‘한국의 성형 집착이 모든 사람을 똑같은 얼굴로 만들었다’는 제목을 달았다.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붙으며 인기 게시물이 됐다. 그러자 익명의 네티즌들이 ‘놀이’를 시작했다. 일부는 사진들을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어 유사성을 강조했고, 어떤 이는 ‘한국엔 정말 똑같은 얼굴의 여성이 많다’며 거들었다.

 그러자 영국의 데일리메일, 미국의 허핑턴포스트, 중국의 인민일보까지 가세했다. 데일리메일은 한국의 인구 대비 성형수술 건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통계를 올리며 ‘성형 중독 한국’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미스코리아 서울 지역 참가자들의 단체사진을 올려 유사성을 주장하고, 성형외과 의사의 확인 코멘트까지 썼다. 그 다음이 더 황당하다. 27일 새벽부터 이 모든 내용이 ‘외신’임을 앞세워 국내 매체들에 고스란히 다시 소개된 것이다. 하나같이 ‘미스코리아 후보들 성형 논란, 해외 네티즌들 비판’ 같은 제목을 달았다. 댓글에는 ‘성형미인, 나라망신’ 같은 표현이 넘쳤다.

 씁쓸하다. 멀쩡하던 미인대회 후보들이 어쩌다 ‘성형 중독에 나라 망신시키는 여성’이란 폄하를 받는가 말이다. 근거라곤 온갖 저급한 내용이 떠도는 사이트의 ‘댓글’뿐이다. 이걸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한 각국 매체의 책임도 크다.

 현재 ‘미스코리아 후보 20명이 모두 성형을 했다’는 주장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비슷해 보인다고 성형이라고 단정할 순 없어서다. 또 성형을 했다 한들 그게 이름 모를 전 세계 대중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은 전혀 아니다. ‘미인대회에 출전한 여성’은 연예인처럼 신상털기의 희생양이 됐을 뿐이다. 이런 악순환은 갈수록 빠르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언제라도 대상을 바꿔 공격을 가하는 마녀사냥의 예고편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할 게 있다. 애초에 왜 ‘미인(후보)’들은 그런 고정된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허핑턴포스트는 “미스 USA 선발대회 때도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이 피부를 태닝한 미인들뿐이었다. 나라와 상관없이 미인대회 참가자들은 어떤 ‘표준적인 미’에 맞추려는 것 같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미남·미녀 평가에 획일화된 잣대를 들이댄다. 그걸 맞추려고 화장술, 미용술, 사진술, 몸매관리와 성형수술까지 동원된다. 또 거기에 가장 잘 맞춘 사람이 뽑히고, 인기를 얻고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만다. 아니, 묵살된다.

 미인대회만 그런 걸까. ‘외모’의 문제가 아닐 뿐 전국의 수많은 대학생이 똑같은 상황이다. 같은 목표(대기업 입사 또는 고시 합격)를 위해 어학 연수·자원봉사·인턴·학점 같은 ‘스펙’을 쌓으며 ‘맞춤형 인재’로 변신한다.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어떤가. 똑같은 일류대학을 목표로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중요한 입시 과목에서 처지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과목을 너무 잘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 몰(沒)개성의 사회. 미인 성형 논란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현실이 더 오싹하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